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2'가 열린 독일 베를린. 지난달 28일 행사장에서 제품 전시 준비에 한창이던 삼성전자 직원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삼성전자 부스에 전시될 55인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2대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제품을 찾을 수가 없었고, 운송과정에서 증발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즉시 독일에 이어 한국 경찰에도 신고했다.
세계 TV시장은 액정화면(LCD)에서 점차 OLED로 넘어가는 상황. 때문에 이 TV 역시 삼성전자의 최첨단기술이 집약된 차세대 제품이었다. 만약 경쟁사로 유출된다면 천문학적 피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박물관에서 철통보안을 뚫고 명화나 보석을 훔치는 도둑들의 얘기는 많이 봐왔는데, 실제로 최첨단 제품이 감쪽같이 증발하는 영화 같은 미스터리가 벌어진 것이다.
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제품은 지난 달 21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포장됐으며 인천국제공항을 출발,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28일 베를린 전시장으로 운반됐다. 전시용 제품은 총 50여대로 패키지 포장이 되어 있었는데, OLED TV 2대만 사라진 것이다.
55인치나 되는 크기와 중량을 감안할 때, 범인인 복수로 보이며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진 범죄로 추정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정확한 사실은 경찰 조사가 끝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최첨단 기술을 빼내기 위해 경쟁사들이 개입된 범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OLED TV는 기존 LCD TV에 비해 동영상 응답속도가 1,000배 이상 빠른데다 색상과 선명도도 월등해 '꿈의 TV'로 불린다. 또한 자체 발광 특성으로 인해 별도 광원(백라이트)이 필요 없어, LCD TV보다 훨씬 얇은 화면을 만들 수 있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올해 22만9,000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OLED TV의 시장 규모는 장차 6,800만대까지 급성장할 전망이다.
OLED TV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기업을 빼면,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업체들도 아직 대형제품 양산에는 성공하지 못한 상태다. 대형 패널 제작 비용이 엄청난 데다, 불량률도 높아 대량 생산에 애를 먹고 있어서다.
이 같은 TV 업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만약 없어진 삼성전자 OLED TV가 해외 경쟁사로 넘어갔을 경우엔 막대한 피해가 예상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더구나 도난 당한 제품은 아직 시장에 나오지도 않은 시제품이란 점에서,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도난 당한 제품은 당초 올해 연말에 생산에 들어가려고 했던 전략 모델이었다"며 "일본이나 중국 업체들에 이 제품이 넘어가서 제품 내부를 해부해 본다면 국내 업체와의 기술 격차도 최소한 4~5개월 이상 좁혀진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전시제품 도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1년 4월 미국에서 열렸던 국제방송장비전시회(NAB) 참가를 앞두고 63인치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를 도난 당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현지 거주민 저질렀던 단순절도였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져 기술유출은 없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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