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영화이기에 작정은 했지만, 보는 내내 단 한 순간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김 감독의 신작 '피에타'는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돼 지금 심사를 기다리는 작품이다.
영화는 천장에서 무거운 고리가 달린 굵은 쇠사슬이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휠체어에 몸을 기댄 앳된 청년이 감당할 수 없는 절망에 굵은 쇠사슬로 자신의 목을 매면서 비극이 펼쳐진다.
끔찍한 방법으로 채무자의 돈을 뜯어내며 살아가는 '강도'(이정진 분)는 피붙이 없이 자라 모든 것이 결핍된 남자다. 악마 같은 그에게 어느 날 엄마라는 '미선'(조민수)이 "미안해 널 버려서. 용서해줘 이제 찾아와서"라며 불쑥 찾아온다. 강도는 30여 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혼란을 느끼며 처음엔 거부하다 점차 그녀에게 빠져들어간다.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채무자의 손을 자르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자살하려는 이에게 보험처리가 복잡하다며 불평을 하는 잔혹한 인간 강도. 하지만 그의 내면엔 결핍된 유년이 잠복해있다. 서른 둘의 나이에도 베개를 껴안고 몽정을 하고, 엄마 품에 파고들어 잠을 청하려는 어린 강도가 숨어 있다.
강도의 흰 자위 가득 서늘함을 품은 눈빛(세상에 대한 감독의 시선일 것이다)은 끊임 없이 관객의 불안을 끝 모를 벼랑으로 몰아간다. 제 살을 베어 여자에 먹이고, 엄마와 아들의 근친상간까지 치닫게까지 하는 잔인한 화면엔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잿빛 도시의 검은 아스팔트 위로 굵고 선명한 핏줄기가 한 획 그어지며 영화의 막이 내린 뒤에도 숨막혀 있던 가슴은 좀체 뚫리지 않는다.
김 감독의 이전 작품들이 성과 권력 등 여러 가지 사회 모순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돈의 문제에만 집착한 것은 '피에타'가 처음이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극단적 자본주의가 펼쳐내는 문제들을 경고하려 했다. 사채에 쫓겨 자살하려는 채무자는 초점 잃은 시선으로"돈이 뭐냐"묻는다. 강도의 같은 질문에 미선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라 답했다.
감독이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비탄에 빠진 모습을 상징하는 '피에타'를 제목으로 삼은 것은 통렬할 슬픔을 전해주려는 의도일 터. 감독은 "피에타는 심장을 파고드는 강렬한 슬픔의 상징"이라고 했다. 미선 역의 조민수는 감독이 '흑발의 마리아'라 호평할 만큼 표정 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하는 내공을 보여줬다. 반면 김 감독의 새로운 페르소나 이정진은 시종일관 단 하나의 표정으로만 버텨낸다. 그저 찡그린 얼굴, 날카로운 눈빛뿐이다. 변주가 없는 굳은 표정은 연기라 할 수 없다. 그저 인상 쓰기일 뿐.
김 감독은 "외국인들은 잘도 이해하는 영화를 한국 관객들이 못 따라간다"고 불평하지만 그의 스크린은 여전히 무겁고 부담스럽다. 이젠 그도 부드러워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오랜 만에 만나는 김 감독의 작품이라 고정 팬들은 반갑겠지만 자신의 전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움이다. 7년만에 베니스에 진출한 이번 작품을 과연 외국인들은 어떻게 볼까. 그 결과가 무척 궁금하다. 6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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