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3명의 아이들이 끔찍한 성폭력에 희생됩니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마냥 슬퍼하고 분노하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잊을 새도 없이 반복되는 참혹한 아동 성폭력 사건에 분노한 엄마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4일 오후 7시 서울역 광장에서 '아동 성범죄 규탄 및 대책 마련 촉구 집회'를 여는 시민모임 '발자국'을 이끌며 '지유엄마'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전모(35ㆍ본인의 요청에 따라 실명 대신 닉네임명으로 표기함)씨는 이날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유엄마는 "한 달 사이에 반복된 끔찍한 아동 성범죄에도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걸 보면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거리로 나선 것"이라며 "아동성폭력범죄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넓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4살짜리 딸을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워킹맘'으로 자신을 소개한 지유엄마는 인터뷰 도중 수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가 이 모임을 주도하게 된 것도 피해어린이가 느꼈을 상상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공감 때문이었다. 살면서 한번도 구호를 외쳐본 적이 없지만 '여주 4세 여아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광장으로 나왔다. 7월 3일 오후 9시쯤 경기 여주군에서 이웃에 살던 임모(41)씨가 아직 말도 제대로 떼지 않은 A(4)양을 성추행 당한 사건이다. 수소문 끝에 전씨가 만난 피해 아동과 가족의 상황은 심각했다. 생식기 등을 크게 다친 A양의 상태는 물론이고 A양의 아버지마저 그 충격에 뇌출혈로 쓰러져 생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가정 파탄 상태였다.
"피해 가족을 돕기 위해 국회의원을 만나 호소하고 시민 단체도 찾아가 봤지만 하나같이 관심이 없더군요."
우리 사회의 무관심에 결국 스스로 나서야겠다고 작정하고 지난 7월말 만든 것이 온라인 커뮤니티 '발자국'이다. '아이들을 잔인한 범죄로부터 지킬 수 있는 의미 있는 발자국을 새기자'는 뜻을 이름에 담았다. 자발적으로 모인 소수의 회원들과 함께 포털 '다음'에 성범죄자 강력 처벌을 위한 법개정을 요구하는 청원 서명을 받는 한편 피해 가족 돕기 모금 운동을 벌여 성금 900만원을 모았다. 모임이 생긴지 한 달여만이다.
240여명이었던 회원은 나주 초등학생 납치ㆍ성폭행 사건 발생한 뒤 4,000명을 넘어섰다. 회원은 주로 30,40대 여성,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엄마들의 불안감과 분노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아동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발자국은 4일 거리 집회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집회를 열고 정부와 정치권에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아동 성폭력 예방대책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다.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접할 때마다 숨죽여 흐느끼던 엄마들이 움직이고 있어요. 오랫동안 쌓인 슬픔과 분노들이 서서히 분출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이에요." 그의 말에는 어머니의 다부진 각오가 스며있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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