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2라운드를 맞았다. 올해 초 지방자치단체의 의무휴무 조례에 반발한 대형마트 측이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 잇달아 승소하면서 의무휴무 조치가 유야무야 되자 서울시가 '판매 품목제한'이란 새 카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중소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담배, 소주, 막걸리 등 특정 품목은 대형마트 판매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대형마트들의 반발이 거세자 서울시는 "논의 중인 안의 하나일 뿐 정해진 것은 없다"고 약간 발을 빼는 분위기이지만, 업계에서는 대형마트에 대한 추가 규제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소 상인들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풍조 속에서 상생의 길이 열렸다"며 반기고 있다. 그러나 대형유통업체들은 소비자의 불편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반대하면서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강병호 서울시 일자리정책관은 "대ㆍ중소기업간의 상생과 협력은 사회 통합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며 "판매품목 제한 등 대형마트 추가 규제는 편의성이나 효율성의 차원을 넘어 사회통합이라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형마트의 등장은 도시 성장에 따른 유통혁명, 여성의 고용 확대 등 사회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며 "대형마트 규제가 시장을 돕는 것도 아니면서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강요하고 있는 만큼 시대 변화에 맞춰 도시행정도 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 "대형유통점 발달은 시대 따른 사회 현상…억지 규제하면 소비자·시민 불편만 가중"
서울시가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담배와 소주, 막걸리, 라면, 두부, 건전지, 종량제봉투 등 50여 품목을 대형마트가 팔지 못하도록 추진하려는 모양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을 지식경제부가 개정하도록 건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서울시의 방침은 특정 이해집단을 위해 소비자와 서울시민의 불편을 가중시킬 뿐이다.
대형 유통업체의 등장은 전세계적 현상이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일본 심지어 중국에서도 이제는 대형유통업체가 주된 유통형태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20세기 후반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자동차문화와 도시규모의 확장, 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보급, 정보통신산업의 발전 그리고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같은 사회적 현상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나타난 결과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들은 매일 장을 봤다. 김치, 장류나 젓갈류와 같은 저장 및 발효식품을 제외하고는 식품을 오래 보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은 걸어서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야 했다. 시장에 가서 사오는 물건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집집마다 냉장고를 갖게 되었고 냉장고 크기도 점점 커졌다. 김치냉장고도 많이 보급되어서 더 많이 식품을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식품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으니 시장에 매일 갈 필요가 없게 되었고 며칠 만에 시장을 가게 되니 한 번에 많이 사게 되었다. 자연히 쇼핑한 물건을 걸어서 들고 오기는 어렵게 되었다. 소득의 증가로 집집마다 자동차를 보유하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자동차에 쇼핑한 것을 싣고 오게 되었다.
자동차 문화의 확산과 이에 따른 도시규모의 확대는 유통혁명을 이끌어 냈다. 고속도로, 자동차 전용도로, 도시순환도로 등이 발달해서 과거보다는 빨리 일터인 도심에 진입할 수 있게 되어 사람들은 부동산가격이 싼 외곽지역으로 빠져나가게 되었다. 신도시가 들어서게 되어 사실상 수도권의 규모는 크게 확대되었다. 상점도 구태여 비싼 도심이나 주택가에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주차시설이 필요하고 고객들이 한 번 쇼핑에 많은 상품을 구입하므로 매장면적을 늘리게 되었고, 그 결과 도심보다는 외곽에 대형유통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정보통신기술의 확산으로 많은 상품을 주문하고 판매하고 재고를 관리하는 비용도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여성고용이 늘어난 점도 대형유통점의 확대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고용의 확대로 여성들이 평일날 장을 보는 것이 어렵게 되었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에 따라 쇼핑할 시간은 주말에나 가능하게 되었다. 주말에 한꺼번에 밀린 쇼핑을 하게 되므로 구입물량이 많아지게 되어 자연히 자동차로 쇼핑하기 편한 대형유통점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대형 유통점의 등장은 현대문명과 사회적인 변화와 이처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소비자들과 시민들은 이처럼 문명의 발전과 사회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변화하는데, 서울시는 문명의 진화와 사회적 변화를 거스르며 소비자와 시민들보고 바꾸라고 하는 셈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라면을 전통시장에서만 팔도록 하더라도 전통시장에 라면을 사러 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대형마트에서 쇼핑하고 오면서 집 앞 편의점에 다시 들러 라면이나 두부를 사게 되는 이중쇼핑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을 돕는 것도 아니면서 소비자와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게 된다.
도시는 문명의 발달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유기체다. 특히 교통수단의 발달에 따라 도시의 모습은 현저하게 변화한다. 말과 당나귀로 물건을 나르던 고대도시의 길은 미로와 같이 너무 좁아서 오늘날의 손수레도 다니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현대도시는 자동차가 다니는 큰 시가지를 자랑한다. 시대에 맞게 도시행정과 할 일도 변화해야 한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제대로 돕는 길은 대형마트를 추가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현대화해서 소비자들이 찾게 만드는 것이다. 문명과 사회변화의 추세에 따르는 소비자들과 시민들을 벌할 것이 아니라 시장을 변화시켜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 "경기위축에 중소상인들 거의 빈사 지경… 동반성장 위한 유통법 개정은 시대 요구"
세계경기 위축과 더불어 양극화 심화에 따른 내수시장의 축소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으며 최근 경제민주화가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대중소기업간의 상생과 협력은 계층간의 갈등과 반목을 완화해 사회통합과 경제성장을 위해 필연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임은 여야가 다 같이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 방법론적 실랑이가 있을 뿐이다. 특히 대기업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까지 침투하는 경영행태는 당장 배가 고프다고 다음해 농사지을 볍씨를 먹는 것이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서울시에서는 대형마트, 기업형슈퍼마켓(SSM) 등 대형유통기업과 전통시장 등 중소유통업자의 동반성장을 통해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 동안 대형마트 등에 대해 영업제한 등의 규제를 통해 중소유통업자와의 공생을 꾀하고 있다. 또 이들에 대해서는 중소유통물류센터 건립운영, 생계형 자영업자 보호육성 등 다양한 시책을 마련하여 추진하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 SSM에 대한 의무휴업 등 영업제한 제도는 4월부터 대부분의 자치구에서 시행되었는데 매월 둘째, 넷째주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고 매일 오전 0시부터 8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이 제도시행 이후 서울시 자체 설문조사결과 조사대상자의 47.2%가 의무휴업일 전 주에 비해 매출액이 증가했다고 응답하는 등 그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중소상인들은 의무휴업일 확대 등 영업제한제도를 강화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참여연대의 7월 여론조사에서도 조사대상자의 72.4%는 'SSM의 골목상권 진출규제'에 찬성했고, 74.5%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월 송파ㆍ강동구에 대한 영업제한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에서는 대형마트 등에 대한 영업제한 취지에 대해선 공감하나 의견제출 기회 미부여 등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취소결정 했다. 이에 각 자치구에서는 법원에서 판시한 하자를 치유하기 위해 조례를 개정 중에 있다. 대부분의 자치구에서 늦어도 11월까지 조례개정 후 영업제한을 재개할 예정이다.
서울시에서는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조례개정 후 영업제한 재개 이외에도 영업제한 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백화점, 쇼핑센터 내에 입점한 대형마트와 대형 체인 편의점을 영업제한 대상에 포함하고, 농수산물 매출액 비중이 전체 매출액의 51% 이상인 경우 영업제한 면제조항 삭제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7월에 지식경제부와 중소기업청, 국회의원 등에게 건의한 바 있다. 국회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건의안이 10여 건 이상 발의되어 있는 상태이다.
또 대형마트와 SSM이 입점 및 확장할 때 입점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하고, 중기청의 사업조정권한을 시ㆍ도로 이양해 시ㆍ도지사의 조정권고안에 이의가 있으면 중기청에 다시 심의하는 '2심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서울시에서는 중소상인을 보호하고 그들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대형마트, SSM에 대한 판매품목 제한이다. 이는 정치권에서도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대형마트의 영업활동으로 인근 지역중소유통업자가 중대한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을 경우 특정품목(중소기업 적정)의 골목상권 침투 제한을 검토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는 편의나 효율성 차원을 넘어서 상생과 사회통합의 가치구현을 위하여 추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에서도 이러한 제도 도입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시장에 미치는 효과 등을 감안하여 소비자단체, 여성단체, 전문가, 기업인협회 등으로부터 다양하고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하여 추진할 것이다. 최근 사회적 양극화와 내수시장의 축소로 인한 경기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여럿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서울시의 다양한 시책을 통해 대중소기업이 상생협력해 모든 서울시민이 다 같이 행복하게 잘사는 사회를 고대해 본다.
강병호 서울시 일자리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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