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번두리번 사람들을 둘러보게 된 건 계절의 변화를 짐작케 하는 옷차림의 다양함을 느껴서다. 여전히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젊은 애기엄마가 있는가하면, 짙은 갈색 체크에 허리띠까지 동여 맨 트렌치코트를 입은 오피스우먼도 눈에 띄었으니 이 모자이크 같은 한두 주의 뒤섞임 뒤에 덜컥, 번듯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을 가을.
덥게도 춥게도 그 어느 방향으로도 기울지 않는 중심잡기로 사람이라는 본연에 충실할 수 있는 계절이 코앞이기에 작정하고 백화점에 우산을 사러 갔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신발장 서랍에 칸칸마다 두 개씩은 접혀 들어 있는 우산의 살이 죄다 부러지거나 휘어졌기 때문이다.
영국처럼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는 나라라면 건강한 우산 문화가 정착되었으련만 지하철 입구에서 쌓아놓고 파는 우산이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일회용으로 치부해버리기 일쑤였던 우산. 우산은 비쌌다. 우산은 싸지 않았으나 문득 제 역량에 비해 이렇게 푸대접을 받는 물품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 뭔가.
개구리 왕눈이처럼 비를 연잎으로 가릴 수도 없고, 우산이 아니라면 값비싼 미용실 머리도, 메이크업도 명품 정장도 가방도 구두도 무엇보다 마음도 죄다 젖어 그저 바들바들 떨어야 할 우리… 사소하다 싶은 사물에 불현듯 눈이 가는 건 비단 시를 쓰기 위한 전조가 아님을 나는 우산을 펴며 느낀다. 그나저나 우산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누굴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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