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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미운 오리 새끼'의 아름다운 캐스팅

입력
2012.09.0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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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놀랐다. 한번은 배우들, 또 한번은 그들의 연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가을 SBS TV < 기적의 오디션>을 본 시청자라면 그럴 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 쇼는 끝난 지 오래이고, 이미 우리는 그들을 잊어버렸으니까. 예술에서조차 점수를 매겨 순위를 정하고,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이 아닌가.

누구도 일등은 아니었다. 일등은 고사하고, 생방송으로 겨루는 12명에도 끼지 못했다. 김준구는 강렬함이 없어, 늙은 패션모델 고영일은 매력이 부족해, 심지어 연기 경험이 있는 조지환과 문원주까지 뚜렷한 개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생방송에 진출한 두 명의 운명도 비슷했다. 정예진은 바로 탈락했고, 심은하를 연상시킨다는 박혜선도 8명이 겨루는 무대에서 몸에 맞지 않은 발레와 비보이를 선보이고는 방송에서 사라졌다.

<기적의 오디션> 은 그들에게 '기적'을 주지 않았다. 공정한 경쟁, 기회란 이름으로 방송에 난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대부분이 그렇다. 일등 자체가 기적일 수는 없다. 그들에게 기적은 오디션에서 일등이 아니라, 인생 목표가 되어버린 배우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자신이 있고 싶은 곳에 있지 못하면 미운 오리 새끼가 될 뿐이다.

곽경택 감독이 그들을 제목까지 <미운 오리 새끼> 인 새 영화에 불러모았다. 그렇게 간절하던 기회란 기적을 선물한 것이다. 곽 감독이 TV에서 그들의 멘토를 맡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문원주는 그의 멘티도 아니었다. 감독의 방위병 시절의 이야기인 <미운 오리 새끼> 의 주요 배우는 딱 한 사람 아버지 역의 오달수를 빼고는 모두 신인들, 그것도 <기적의 오디션> 의 얼굴들이다.

나름대로 방송을 꼼꼼히 봤는데도 영화에서의 그들이 낯설었다. 주연을 맡은 김준구는 사전 정보가 있었지만, 헌병부대장을 맡은 고영일과 미친 여자 혜림이로 나온 정예진은 영화가 끝나고 누군가에게 얘기를 듣고서야 머리를 쳤다. 일등이 아니었기에 일찌감치 기억에서 지워져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오디션 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도저히 신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분명 우리 몰래 연극 쪽에서 갈고 닦은 듯한 깊고 강한 연기를 보였다.

누가 날카롭고 냉정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헌병대장이 <기적의 오디션> 에서 제2의 인생에 도전한다며 별난 옷 입고 쑥스럽게 무대에 섰던 1990년대 패션모델 고영일이라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웬만한 눈썰미가 아니면 헝클어진 머리에 커다란 오리 장난감을 등에 업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마음씨 착한 미친 여자 혜림이 불우한 자신의 가정사를 고백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정예진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달라졌고, 방송의 쇼가 아닌 영화에서 진짜 배우가 됐다. 그 소중한 꿈의 시작을 위해 그들은 기꺼이 출연료까지 제작비에 던져 넣었고, 어느 역을 맡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혹독한 리허설을 견뎌냈다. 김준구는 11시간의 폭우 속에서 액션을 반복한 뒤에 3일 동안 앓아 누웠고, 조지환은 몸무게를 25㎏이나 늘렸고, 문원주는 전신노출 연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만이 기회란 기적을 붙잡는 길이고, 그 기적을 만들어준 감독에 대한 보답이고, 감독으로서는 너무나 소중해 포기할 수 없었던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곽경택 감독은 왜 미운 오리 새끼들을 데려왔을까. 그들에게서 그는 자신의 지난 모습을 봤다. 그들에게는 아직 미래가 남아있어 그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들의 연기가 눈에 띄어 누군가에 의해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영화 <미운 오리 새끼> 를 보고 나면 그 바람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직도 그들은 백조가 아닌 미운 오리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꿈을 향한 열정과 투혼, 감사의 마음이 있다. 그것을 가지고 세상을 날수 있도록 해준 곽경택 감독의 아름다운 캐스팅. <미운 오리 새끼> 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감동일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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