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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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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13>

입력
2012.09.0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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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아가는 이는 이전에 들은 바 있던 예산 덕산의 박인희 박도희 형제였다. 박도희는 서 지사와 이신통이 한양에서 군란이 일어났을 적에 난군 중에 파옥이 되어 고향으로 보냈던 내포지역 천지도의 행수였다. 우리가 백화를 만나러 갔을 적에 그녀가 의탁하고 있던 손동리 선생의 맏아들이 천지도 난리가 일어나기 전해에 서일수가 도인 몇 사람과 와서 묵어갔으며 그에게서 이신통이 이미 오래전에 천지도에 입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였다. 손 선생은 입도한 도인은 아니었지만 살아생전에 전주 이방의 소개로 서일수와 친밀하게 지냈으며 그에게 선산까지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백화는 이신통과 헤어진 뒤에 그때 처음으로 집에 온 서일수와 도인들을 통하여 신통의 소식을 들었던 셈이었다. 연옥이 애가 달아 자꾸만 물었더니 백화는 기억을 더듬어 이신통과 자기가 사계축의 박삼쇠 패거리와 내포 지방을 연행 다닐 적에 예산 읍내에서 박도희를 만났고 그의 형 집에 묵었으며 놀이패들과 헤어진 뒤에도 다시 찾아가 열흘이나 묵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백화도 연옥이처럼 한양에서의 이신통의 행적을 자세히 듣고 기억하고 있어서 아마도 예산 덕산의 박씨 형제를 만나면 같은 도인들이니 서일수와 이신통의 행방을 알게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벌써 천지도의 난리가 폭풍처럼 휩쓸고 간 뒤라 지금쯤 그 전의 도인들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근처에 가보면 소문이라도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집 떠난 지 나흘 만에 우리는 예산에 도착했다. 뱃길로 부여 공주를 거쳐서 어염 짐을 풀어놓고 쉬엄쉬엄 가던 길이어서 장쇠와 곁꾼은 공주에 남겨두고 안 서방과 나만 팔십 리 길을 이틀에 걸쳐서 보행 길로 갔던 것이다. 예산 읍에서 가까운 원마을에 이르니 아직도 해가 중천인 낮것 무렵이었다. 우선 동네로 들어서기 전에 다리쉬임이라도 할 겸 봇짐에 넣어온 인절미로 요기를 했다. 시절이 그러한지라 망설이며 둘러보다가 길가 논에서 소를 몰아 흙갈이를 하고 있던 농부에게 다가가 안 서방이 물었다.

저기 박 초시 댁이 어딥니까?

그 댁은 왜 찾으슈?

농부가 잠시 일을 멈추고 되묻는 것이었다.

저희하구 일가뻘이 됩니다.

농부는 안 서방과 뒷전에 서 있는 나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 손을 들어 가리켜주었다.

저어기 길을 똑바로 가서 돌담이 보이지요? 그 왼편으루 돌아서 죽 올라가면 맨 안쪽에 기와집이 보일 거유.

하고는 농부가 시키지도 않은 말을 하였다.

이것이 시방 그 댁 논이우.

백화에게 듣기로도 박도희 형제네가 일대에서 몇백 석지기는 하는 집이라더니 밥 먹고살 만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가 가르쳐준 대로 돌담을 돌아 양쪽에 몇 채의 초가집이 있는 담을 끼고 올라가 맨 안쪽에 돌담과 일각대문을 발견했다. 사람을 찾으니 하인이 나와서 안에 아뢴 뒤에 그들을 사랑으로 안내했다. 박도희는 긴 저고리와 바지를 걸친 평상복에다 탕건 차림이었다. 방으로 들어서자 안 서방이 먼저 말했다.

뵙겠습니다. 강경 사는 안 서방이라구 합니다.

강경 사는 심 씨입니다.

나와 안 서방은 각자 주인에게 큰절을 올렸다. 박도희는 뭐라고 묻지도 못하고 좀 당황했던 모양이었다. 두 손을 모으고 반절을 하며 응대하던 주인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뉘신지…… 저를 아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서일수 지사와 이신통을 아시지요? 저는 이 서방의 아내 되는 사람입니다.

내가 말하자 주인은 더욱 놀란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나는 난리 이후에 그가 얼마나 걱정이 많아졌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안 서방이 빙빙 돌며 이야기하기 전에 질러서 솔직하게 말을 꺼냈다. 그와 우연히 맺게 되었던 인연이며, 갑오 난리 때에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와 함께 부부가 되어 살던 나날과, 그가 갑자기 집을 떠나던 것이며 내가 남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 다녔던 일까지 조곤조곤 모두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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