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초등학생 납치ㆍ성폭행 사건으로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성범죄 판결의 정확도와 속도를 높이기 위해 법원 전산시스템에 양형 계산 프로그램을 도입해 시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3일 대법원에 따르면 성범죄군 양형기준이 판결에 효과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최근 양형 계산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했고, 일선 법원의 성범죄 전담 재판부와 형사단독 판사들은 지난 7월 이 프로그램의 효과적 활용을 위한 내부 논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측은 "그간 판사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판결의 가장 핵심적인 양형 부분을 양형기준 내에서 엄격히 적용해 도출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의 경우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자의 절반가량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으로 나타나는 등 법원이 성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성범죄 양형 계산 프로그램은 법관통합재판지원시스템(Justice System)과 법원내부통신망(코트넷ㆍCourtNet)에 접속해서 실행할 수 있다. 법관이 프로그램을 구동하면 초기 화면에 '성범죄군 양형기준 수정(2010년 7월15일 공개)'이라는 항목이 뜬다.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의 경우, 법관이 프로그램 상단의 '성범죄' 부분을 체크하면 프로그램이 범죄 유형과 함께 자동적으로 양형 인자를 표시한다. 법관은 재판을 통해 양형에 고려하기로 결정한 인자들을 순서대로 클릭한다. 양형 인자들이 결정되면 프로그램이 계산한 권고 형량이 표시된다.
그러나 법관이 프로그램을 통해 산출된 권고 형량을 특별한 이유로 높이거나 낮출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권고 형량을 직접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직접 수정된 권고 형량은 '영역 이탈사유 발생'으로 따로 표시된다.
성범죄와 함께 폭력 등 여러 가지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의 경우, 미리 산출한 권고 형량을 바탕으로 기본범죄가 먼저 설정된다. 성범죄가 피고인의 행위 중 가장 형량이 높을 경우 성범죄 혐의 다음으로 범죄의 중함에 따라 나머지 혐의 내역이 표시되며, 이후 복합 계산을 통해 다수 범죄에 대한 권고 형량이 도출된다.
이렇게 산출된 결론은 판결문에도 기재된다. 사건 당사자도 양형 계산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성범죄 양형 계산 프로그램에 대한 법관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형사단독 판사는 "판결 건수가 많아 힘들어하는 단독판사의 경우 개별 사건의 양형 계산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최근 성범죄의 심각성이 법관들 사이에서 다시 인식되면서 양형 계산 프로그램 사용 활성화 및 그에 따른 실무적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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