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입한 지 2년 된 '염색불량 원피스' 팔고선 환불·교환도 거절
지난해 한 백화점 명품관에서 F사 여름 원피스를 50% 할인받아 120만원에 구입한 이모(34)씨는 2,3회 착용한 후 등 부분이 변색되어 매장을 찾았다. 매장 직원은 "땀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이씨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는 몇 번 입고 색상이 변하는 게 무슨 명품이냐고 따져 물었지만 F사는 전혀 교환이나 환불 의사가 없었고 결국 한국소비자원에 심의를 의뢰했다. 세탁명장, 섬유박사 등 섬유전문가로 구성한 섬유제품심의위원회가 심의한 결과 수입된 지 2년이 지난 제품으로 드러났고 '염색성 하자에 따른 제품하자'라는 결론을 얻었다. F사는 결국 소비자원의 권고에 못 이겨 환불을 해줬다.
지난해 4월 샤넬 면세점 매장에서 한정판 모델인 가방을 약 300만원에 주고 구입했던 김모(30)씨는 지난달 초 가방을 잠그는 금속 부분이 떨어져 수선을 맡겼지만, 아직까지 수리가 가능한지 여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구입한 지 1년이 지나는 바람에, 몇 십만원은 될 것으로 보이는 수선비도 김씨의 몫이다. 매장 직원은 "파리 본사에서 전 세계 애프터서비스(AS)물량을 수집하고 있어 답변을 듣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며 "AS여부가 가능한지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고만 했다. 김씨는 "해외 본사로 가면 6개월가량 걸린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현재 가방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등 AS가 너무 엉망인 것 같다"고 말했다.
명품이 사치품에서 벗어나 대중화한 지는 오래다. 길거리에서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 이른바 명품 가방을 든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여성들뿐만 아니라 명품 시계, 명품 구두를 찾는 남성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주요 외국 명품 업체들은 최근 5년간 국내 매출과 순익이 급증하며 명품 시장 규모도 6조원대를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명품 업체에 한국 소비자들은 여전히 '봉'일 뿐이다. 값은 비싼데, 교환도 환불도 쉽지 않다. 매장직원들의 콧대는 또 어떤가. 구입 후 AS를 하려 해도 시간과 비용을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동네 명품수선점들이 번성할 정도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발표한 '주요 20대 해외 명품 소비자 불만 접수 현황'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주요 20대 명품에 대한 총 불만 상담 건수는 2,720건이었고, 특히 상위 10대명품의 불만 신고 건수가 85%를 차지해 고가의 명품일수록 소비자 불만이 높았다. 불만은 주로 품질과 AS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명품업체들은 개선할 의향도, 조짐도 없다. 지난해 7월 한·유럽연합(EU) FTA가 발효됐음에도 보란 듯이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루이비통은 이미 FTA 발효 전 미리 가격을 5% 올렸고, 에르메스 샤넬 멀버리 등이 올 초 평균 5%가량을 인상했다. 샤넬의 2.55 빈티지 라지 가방은 한·EU FTA 발효 후 639만원에서 607만원으로 잠깐 내렸지만 현재는 74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까르띠에, 롤렉스 등 명품 시계들도 5월부터 5~6% 가격을 인상하기 시작했고, 프라다는 8월부터 일부 가격을 3~5% 올렸다. 명품업계 관계자들은 "원자재 값과 운송비 상승"을 가격 상승으로 꼽지만 '한국시장에선 비싸야 잘 팔린다'는 명품업계의 고가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이처럼 가격을 올리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명품 업체들이지만, 국내에 기여하는 것은 전무하다. 투자도 없고, 고용은 매장직원이 전부다. 재계전문사이트인 '재벌닷컴'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해외 명품업체들은 국내 매출이 3배, 이익은 4배로 커졌지만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은 본사로 송금됐으며 국내 사회공헌은 사실상 전무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올리든 사회공헌에 인색하든 고객들로부터 호응이 높기 때문에 백화점들은 명품을 입점시키는 데 공을 들일 수밖에 없고 명품업체들도 전혀 개선하지 않는 것 같다"며 "한국 소비자는 이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충성도 높으면서 가장 고분고분한 고객일 뿐"이라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 189만원짜리 스토케 유모차 유럽에선 111만~137만원
"아기들이 스토케가 뭔지, 명품이 뭔지 아나요? 일부 젊은 엄마들의 과시욕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에요. 스토케 매출을 한국이 다 올려주는 것 같아요."
결혼하면서 동탄 신도시에 살게 된 직장인 김모(34)씨는 주말에 공원에 갈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했다. 스토케, 퀴니 등 고가 수입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엄마들이 단체로 눈에 띄는 것이 보기 민망할 정도라는 것. 그는 "나도 아이를 낳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정말로 애 유모차에 100만원 넘은 돈은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 유모차 업체에게 한국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에바 헤드버그 스토케 아시아ㆍ태평양 부사장이 지난 4월 "한국 매출액은 아시아ㆍ태평양 시장의 30%를 차지한다"고 밝혔을 정도다. 지난해만 8,000대가 팔렸으며,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매출성장률이 무려 50%에 달해 본사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시장이라고 한다. 지난달 막을 내린 육아용품 전시회 '베이비페어'에서도 스토케 부스는 예비 부모들로 북적거렸다.
문제는 가격이다. 품질이 좋으니까 어느 정도 비싼 건 인정하지만, 본사의 2배에 가까운 값을 받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 조사(3월)에 따르면 스토케 익스플로리는 스페인에서 137만원, 네덜란드에서 111만원에 팔리는 데 비해 한국에서 189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오르빗 유모차는 미국에서 91만원, 가까운 일본에서도 117만원에 팔리는 것을 우리나라에서 145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잉글레시나 트립은 이탈리아에서 17만원에 판매되지만 한국에서는 42만5,000원이다. 독점 라이선스를 받은 수입업체들이 경쟁시장이 아니라는 점을 이용해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의 조사 결과 발표 후 사회적으로 수입유모차의 가격 거품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일부 업체는 가격을 내리기도 했다. 스토케는 189만원에서 169만원으로 20만원으로 내렸고, 잉글레시나 트립은 14% 인하됐다. 퀴니 버즈는 105만원에서 98만원으로 내렸다. 하지만 내리지 않은 브랜드도 많고, 인하한 브랜드조차 유럽 현지가격에 비하면 여전히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유아용품 코너의 유모차와 유아용품은 수입 제품 일색이다. 소비자시민모임 조사 당시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유모차 총 44종 중 해외브랜드 유모차가 41개(93%)였고, 국내브랜드 유모차는 단 3개 제품(7%)에 불과했다. 게다가 복잡한 기능이 필요한 유모차는 그렇다 쳐도, 유아용 식탁의자이나 아기띠조차 수입브랜드는 30만~50만원에 이른다. 출산준비를 위해 백화점을 찾은 예비 부모들의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 주방용품·전기면도기·다리미도 '高價 행진'
올 3월 결혼한 주부 이모(29)씨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 친구들로부터 주방용품 혼수를 무슨 브랜드로 해 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씨는 "새신랑이 무슨 가방을 사 주느냐, 결혼식은 어디에서 하느냐 다음으로 많이 들은 질문"이라면서 "평소 요리라곤 안 하던 친구들이 휘슬러 냄비, 헹켈 칼은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유럽산 수입 주방용품과 생활용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 브랜드들 역시 한국소비자에 대한 '바가지'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고가 수입제품의 주된 유통경로인 백화점 판매가격이 크게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6월 대한주부클럽을 통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휘슬러, 볼(WOLL) 등 고가 수입 프라이팬 가격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미국 등 외국 백화점에 비해 3~57%까지 비쌌다. 또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필립스 브라운 등의 전기면도기와 전동칫솔 등 수입 생활용품도 수입 원가에 비해 2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제품 모델이 다양한 일부 생활용품 업체들은 한ㆍEU FTA 후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을 피하기 위해 모델명을 국가별로 다르게 해 가격 비교를 불가능하게 하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필립스전자는 전기면도기, 전기주전자 등 주력제품의 온라인 판매 가격을 낮추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15억원을 부과 받기도 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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