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자연관은 복잡하다. 그 세세한 원리로 따져 보면, 도교, 유교가 다르고, 도교 중에서도 종교로 확립된 도교와, 노자와 장자가 달라진다. 그런가 하면 불교의 자연관 역시 앞의 예들과 다르다. 그러나 하나의 공통된 인식이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고정된 실체는 없다는 이 인식에서 음양오행과, 역(易), 그리고 도(道)의 원리가 발생한다. 그 결과 동아시아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신이 없는 종교가 탄생하게 된다. 노자가 말하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의 뜻은 '자연은 특정한 사람에게 만 인자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식의, 천지의 행위를 설명하는 글귀가 아니라 천지의 특성을 설명하는 말이다. 글자 그대로 '천지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자연은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아무 생각없이 산다는 말은 그럴 수 만 있다면 참 좋은 상태다.) 이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 기쁨과 즐거움과 가여움의 어떤 감정도 없는 상태가 유교에서 얘기하는 중(中)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땅히 자기 동일성이 없는 상태, 즉 공(空)으로 불교에서 얘기 된다. 여기에서 유교와 도교와 불교가 갈라지는 것은 '아무 생각이 없는 자연'을 자연 자체에 두느냐, 인간에 두느냐, 세계에 두느냐에 따른다.
이 '아무 느낌이 없는 상태'에서 도교는 모든 느낌이 지나가며, 유교는 '아무 느낌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가능성이 일어나고, 불교는 생사를 잃게 된다. 같은 생각에서 출발하더라도 이렇게 그 모습은 각자다. 그렇다면 당연히 동아시아의 나라마다, 풍토에 따라, 그리고 정치적, 사회문화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그것을 수용하는 양상도 달라질게 틀림없다. 그리고 건축은 무엇보다도 그러한 풍토와 이데올로기를 드러나게 받아들인다. 지금은 근대건축의 영향으로 전세계의 모든 도시들이 비슷비슷한 방법으로 비슷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생산방식의 한계가 있었던 과거에는 사뭇 지역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은 땅을 만지는 일이다. 땅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서 자연에 대한 태도를 읽을 수가 있다. 예를 들면 평지가 많은 중국에서는 일정한 넓이를 가로 세로로 나누고, 그 안에서 산도 만들고, 호수도 만들며, 갖은 진기한 물품들을 배치한다. 거의 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재배치 된다. 다분히 도교적인 영향이 크다. 온갖 인위적인 노력을 들여 '스스로 그러한'(自然)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일본의 건축은 '스스로 그러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보다는 읽혀지게 만든다. 손을 댄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그 흔적은 다분히 불교적이다. 사실 불교와 도교가 섞여 있다고 말해야 겠지만 단순화하면, 불교(혹은 도교)의 이상세계를 상징화해 제시하는 것이 일본의 건축이다. 그에 비해 조선의 건축은 땅을 만질 때 인간의 손길을 최소화 하거나 아예 땅이 생긴 그대로를 이용한다. 아무 느낌이 없는 자연, 아무 생각이 없는 자연, 그 자체 스스로인 그것(I am that I am)을 구현한다. 그 중에서도 돌을 쌓아 단을 만들어 집을 올리는 수법은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얼핏, 돌을 쌓아 단을 만들어 집을 올린다는 것은 대단히 인공적인 냄새가 날 것 같지만, 조선 건축은 그것을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아주 인공적인 수법으로 아주 자연스러운 것을 만들어내는 이것은, 동아시아의 자연관의 본질인 '모든 것은 변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말하자면 집을 완성태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마찬가지로, 자연을 완성태로 보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다. 자연과 인간을 똑같이 불완전한 상태로 보는 게 아니라 변하는 존재로 파악하고, 거기에 자연의 공간을 차용해서 인간의 공간으로 만들고, 인간의 공간을 자연의 시간으로 되돌리는, 작용을 위한 건축. 이것이 조선의 건축이다. 조선건축의 돌쌓기는 그것이 담이든 축대든, 연못이든, 모두 이 시간의 방향과 공간의 확장을 위해 만들어진다. 당연히 거기에는 커다란 비움, 온갖 가능성으로 꽉 찬 허(虛)가 존재한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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