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우리에게 성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노력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매 순간 헛되게 살지 않으면 그만이지.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해 자선활동에 평생을 바친 테레사 수녀가 1997년 9월 5일 인도 캘커타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였다.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가 본명인 테레사 수녀는 1910년 현재 마케도니아공화국의수도인 중부 유럽과 아테테의 거점도시 스코페에서 태어나 31년 정식 수녀가 됐다.
수녀원에서 안락한 교사 생활을 하던 그는 선교활동을 위해 인도에 파견된 후 캘커타에서도 가장 비참한 빈민가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버려진 힌두 사원을 개조해 가난한 이들이 조용하게 죽을 수 있는 무료 호스피스를 만들었다.
50년 바티칸의 허락을 받고 새로운 수녀회인'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설립해 빈민과 고아, 나병환자를 돕는데 일생을 바쳤고 이때부터 '마더 테레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13명으로 시작했던 사랑의 선교 수녀회는 그가 세상을 뜰 무렵 4,000명의 수녀와 1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는 거대한 단체가 됐다. 이들은 지금도 지구촌 각지에서 수 많은 호스피스와 고아원, 그리고 구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은 처음에는 테레사 수녀의 봉사의 손길을 선교 목적이라 생각하고 적대시했다. 하지만 오로지 가난하고 병들어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안식과 위안을 주는 것을 목표로 삼은 그에게 선교는 이미 안중에 없었다.
검은 수녀복을 벗고 가장 미천한 여인들이 입던 인도의 흰색 사리로 옷을 갈아입은 그는 묵묵히 봉사 정신을 실천해 나갔다. 이 흰색 사리는 훗날 테레사 수녀를 상징하는 옷이 됐다.
시간이 지나자 가톨릭 교단과 교황도 그의 활동을 지지하기 시작했고 세계 각국에서 기부금이 모아졌다. 많은 유명인사들이 마더 테레사를 만나기 위해 인도를 방문했고 그 때마다 기부금이 쌓여갔지만 그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기부금은 통째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으며 본인은 여전히 흰색 사리 하나만 걸친 채 나병 환자를 씻기고 병든 아이들을 돌볼 뿐이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살아있는 성녀(聖女)라 부르기 시작했다.
79년 평소와 같은 흰색 사리와 샌들차림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는 상금을 받으며 "이 돈으로 빵을 몇 개나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또한 "세계 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집에 돌아가 가족을 사랑해 주세요."라고 대답했다.
97년 9월5일 마더 테레사가 세상을 떠나자 인도 정부는 이날을 국상일로 선포했으며, 전 세계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아쉬워했다. 그의 삶 자체에 녹아있는 인간의 희망과 숭고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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