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이라는 분야에 막연한 관심만 있었지 정작 연극 한 편 보러 간 적 없었어요. 그런데 멘토 선배와 연극을 준비하는 현장을 직접 가 보면서 제 목표에 확신이 섰고 어떻게 목표로 다가가야 할지 명확해졌어요."
경복고 3학년 손석민(17)군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진로 고민이 많았다. 대학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국내에는 대학원 과정만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어영문과와 신문방송학과를 목표로 설정, 고민을 잊었다. 손군은 "대학 때는 폭넓게 공부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대학원부터 본격적으로 가고 싶은 길로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손군의 인생 향로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경복고 선배인 심길섭 극단짓패21 대표다. 경복고 동문 선배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멘토로 활동하는 심 대표는 두 달에 한 번 꼴로 손군을 만나 연극제작의 실전을 보여주었다. 배우를 꿈꾸는 다른 멘티에겐 연기지도도 해주었다.
경복고의 멘토링 프로그램은 2010년부터 경복고 총동창회 동문들의 재능 기부로 운영되고 있다. 사회에서 활동하는 동문(시니어 멘토), 대학 재학 중인 동문(주니어 멘토)들이 재학생(멘티)과 결연을 맺고 학업과 인성계발을 돕는 것이다. 주니어 멘토는 '친한 형'의 역할을 하고, 시니어 멘토는 자신의 진로 개발에 진지한 도움을 준다. 지금까지 학생 97명, 동문 멘토 150여명이 참여했는데 지원자 수는 날로 늘고 있다.
임달순 진로진학부장교사는 "당초 동창회에서 후배들의 인성 함양을 위해 시작한 프로그램이 재학생들의 진로교육ㆍ탐구에 대한 필요와 맞물려 점차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발전이 올해부터는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는 것. 3학년 이치헌(19)군은 어릴 때 중국에서 유학한 경험을 살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멘토의 지도를 받아 '한중 무역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어려운 주제로 20여쪽의 소논문을 작성했고, 3학년 정선호(17)군은 멘토인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의 도움으로 청소년 물가지수를 도출했다. 두 학생은 이를 통해 교내 축제에서 학술부문 수상을 했고 대입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정군은 "원래 경영학과를 지망했는데, 멘토 선배에게 기본적인 개념을 배우고 지도를 받으면서 경제학과로 진로를 변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멘토링은 멘티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선배 멘토에게도 큰 의미를 안겨준다. 2학년 학생 4명의 멘토로 활동한 한상완(51)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사회적 성공만 바라보고 달려 오다가 내가 다니던 교정에서 후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보람도 있고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한 상무는 후배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매주 금요일 저녁 시간을 비운다. 그는 "경제지식을 알려 주는 것보다 아이들이 올바른 경제관을 가질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다"며 "각계각층 저명 인사들이 은퇴 후 재능기부하는 외국의 경우처럼 이런 사례가 늘어나면 공교육 내실화의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실 창의인성계발부장 교사는 "프로그램에 대한 멘토와 멘티 모두 반응이 좋아 계속 추진할 예정"이라며 "정부나 교육청의 지원 있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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