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오던 기름값이 다시 2,000원을 넘어섰다. 하반기 들어 글로벌 불황에도 불구하고 이란을 둘러싼 중동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국내 유가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일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전국 주유소의 보통휘발유 평균 가격은 전날에 비해 ℓ당 1.10원 오른 2,024.73원을 기록했다. 전날엔 전국 모든 지역의 휘발유 값이 2,000원을 돌파하면서 지난 5월20일 이후 3개월여 만에 2,000원대를 회복했다.
최근의 상승 추세는 심상치 않아 보인다. 두 달 전인 7월 중순만 해도 보통휘발유 가격은 계속 떨어졌다. 하지만 7월16일 1,891.86원으로 저점을 찍은 이래 50일 연속 오름세를 타고 있다. 국내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기름값이 뛰는 것은 국제유가의 강세가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국제유가는 현재 배럴당 110달러(두바이유 기준)대에 올라 있다. 6월22일 89.15달러까지 하락했던 것과 비교하면 25%가량 상승한 셈이다. 이 기간 구리, 알루미늄 등 다른 국제원자재 가격이 5% 미만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과도 대조를 이룬다.
이처럼 석유만 유독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것은 공급에 적신호가 켜진 탓이다. 특히 미국ㆍ유럽연합(EU)의 대 이란 제재 효과가 두드러졌다. 이란의 일일 원유 수출량은 통상 250만~300만배럴 정도인데, 7월 80만배럴로 급감했다. 이는 지난해 리비아 민주화 사태 때의 생산차질과 맞먹는 수준이다. 또 장비 노후화와 매장량 고갈로 어려움을 겪던 영국 북해지역 원유 생산량이 8월 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져 브렌트유의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여기에 대규모 투기자금의 유입도 원유 시장을 교란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진영 한국은행 국제종합팀 과장은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순매수가 6월 말 11.3만계약에서 19.3만계약으로 70% 증가해 유가 상승을 기대한 투기자금이 빠르게 원유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조만간 국내 기름값이 다시 2,000원대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오히려 휘발유ㆍ경유 가격의 추가 인상이 예상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공급 차질의 원인인 지정학적 리스크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고, 싱가포르 현물 시장의 원유 가격이 약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유가에 반영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상승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