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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진정한 반성 없이 화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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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진정한 반성 없이 화해 없다

입력
2012.09.0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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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본인 고지도 연구가 구보이 노리오는 1870년대 말부터 1901년 사이에 일본 정부가 직접 발행했거나 검정(檢定)한 지도들을 공개하고,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한 지도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러일전쟁' 이전까지 일본인들에게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었다며, "독도는 역사적으로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 노다 요시히코 총리에게 "진실을 직시하라"고 일침을 놓았다.

구보이씨가 지적한대로,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한 것은 '군략상' 필요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군략상' 요구는 독도에 국한되지 않았다. 1904년 2월 8일, 한국에 상륙한 일본군은 곧바로 서울을 점령하고 한반도 전역을 일본군의 지배하에 두었다. 같은 달 23일에는 한국 정부를 협박해 이른바 '한일의정서'를 체결했다. 이 의정서의 핵심 조항은 "대일본제국 정부는 (대한제국 영토 내에서) 군략상 필요한 지점을 마음대로 수용할 수 있다"였다. 대한제국의 영토 주권을 사실상 박탈한 셈이다. 일본이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한 것은 이로부터 1년 뒤인 1905년 2월 22일이었다. 이 이전의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더라도, 대한제국 정부는 이보다 5년쯤 앞선 1900년 10월 27일에 관보를 통해 독도가 울릉군의 부속도서임을 명시해 둔 상태였다. 이어 같은 해 11월 17일, 일제는 이른바 '을사늑약'을 강요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독도 문제에 대해 외교적으로 항의할 기회조차 잃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과 반인도적 식민통치였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로 편입한 것과 한반도 전역을 식민지로 삼은 것은, 하나의 연속적 과정이지 서로 분리된 '사실들'이 아니다. 독도 문제가 영토 문제 이전에 역사 문제인 소이(所以)다.

일본 패전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며 '통절한 반성의 뜻'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했다.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인 2010년 8월 10일에도 당시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한국인들의 뜻에 반한 '일한병합조약'이 한국인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음을 인정하고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했다. 일본 총리는 식민지 지배를 공개적으로 사과했지만, 일본 정부는 오히려 과거 군국주의적 침략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역사 교과서 검정 기준을 바꿨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했으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거부했다. 일본 우파 지식인들은 수시로 일본이 식민지 지배 기간 중 한국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주장을 폈으며, 위안부 강제 동원 등 반인도적 행위들을 '증거가 없거나 부족하다'며 부인했다.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이 일본인들에게 바라는 것은, 이웃 국가와 민족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했던 침략행위 전체, 즉 일본 군국주의 역사 전체에 대한 반성이다.

눈을 안으로 돌려보자. 3월 13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다"며 "그들에게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한편에서 "5ㆍ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최근 그의 측근인 홍사덕씨는 "유신은 수출 100억달러 달성을 위한 조치"였다며 유신체제마저 정당화했다. 그런데도 박근혜씨는 전태일 재단이나 쌍용차 해고 노동자 분향소를 찾아갔다. 이런 일을 두고 일각에서는 "화해와 통합을 위한 광폭 행보"라고 칭송한다. 반성을 요구하는 자세가 이렇게 달라도 되는 것인가. 일본이 군국주의 역사 전반을 철저히 반성하지 않는 한, 한일 간 역사 문제는 계속 외교적 현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군사독재체제의 수혜자들이 군사독재 문화 전반을 철저히 반성하지 않은 한,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반복하거니와, 진정한 반성 없이는 진정한 화해도 없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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