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엄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자에게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한 비율이 예년보다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가 공개되자 일선 형사담당 판사들은 '피해자와 합의나 공탁을 성범죄의 양형으로 고려할 때는 극히 신중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고 앞으로 재판에 적용해 나가기로 했다.
지난달 31일 열린 전국 형사법관 포럼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심 선고 기준으로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전체 사건 피고인의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전체 468명 가운데 225명으로 48.1%를 기록했다. 이는 2010년 41.3%보다 6.8%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의 경우 성폭행이나 강제유사성교 등 무거운 범죄는 대체로 집행유예 선고 비율이 낮아졌지만, 사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강제추행의 집행유예 비율은 1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성인까지 포함한 전체 성범죄를 대상으로 해도 집행유예 비율은 2010년 38.8%에서 지난해 40.4%로 다소 높아졌다. 벌금형도 지난 2010년 10.5%에서 지난해에는 13.5%로 높아진 반면, 무기징역을 포함한 실형은 3% 정도 낮아졌다.
합의 여부를 기준으로 보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는 3.3%(13세 이상 강간)부터 46.4%(강제추행)까지 집행유예 선고 비율이 분포됐지만, 피해자와 합의된 경우에는 63.7%(13세 이상 강간)∼89.6%(강제추행 상해) 수준으로 집행유예 비율이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포럼의 사회를 맡은 이원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합의나 공탁을 집행유예의 결정적 사유로 하는 기존의 관행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법관들 사이에 있었다"고 말했다. 대법원 측은 "이날 포럼으로 법관들이 집행유예 선고에 대한 사회 안팎의 우려를 인식한 만큼 앞으로는 성폭력 범죄자의 집행유예 비율이 대폭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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