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2일 우호적인 단독 회동을 가짐에 따라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여당 당적을 유지하고 퇴임하는 첫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역대 대선을 앞두고 현직 대통령과 '미래권력'인 여당의 대선 후보는 대체로 애증(愛憎)의 관계를 보였다. 여당 후보는 임기 말 인기가 쇠락한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결별했고, 결국 대통령은 예외 없이 탈당했다.
대통령과 여당 대선 후보의 심각한 충돌은 공교롭게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각각 후보와 대통령일 때 일어났다. 1992년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 민자당 후보와 갈등을 벌이다 대선을 3개월 앞두고 9월에 탈당했다. 3당 합당으로 민자당에 합류한 김 후보는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 측의 견제를 받았고, 대선 후보가 된 뒤에는 노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1997년 15대 대선 국면에선 김영삼 대통령이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갈등을 벌이다 11월에 탈당했다. 김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당적을 유지하려고 버텼지만 이 후보 측이 'YS(김영삼) 인형 화형식'까지 치르면서 몰아붙이자 탈당했다.
2007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열린우리당 후신) 후보와 갈등했다. 노 대통령은 여당의 압박으로 2월 탈당했고 정 후보는 8월에 열린우리당을 해체하면서 두 사람은 직설적으로 서로를 비난했다. 하지만 2002년 16대 대선 당시에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큰 갈등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5년 동안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관계는 갈등과 협력이 교차하는 '시소'였다. 18대 총선 공천(2008년) 세종시 수정안(2010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2011년) 등 현안에서 두 사람은 부딪쳤지만 박 후보는 두 번(2009년, 2011년)이나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다녀왔다. 특히 두 사람은 지난 3월 "우리나라에 그만한 정치인이 몇 사람 없다"(이 대통령) "대통령의 탈당이 해법은 아니다"(박 후보)며 덕담을 주고 받았다.
이번 회동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김영삼·이회창' 보다는 '김대중·노무현' 조합으로 갈 공산이 커졌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과 여당 후보의 관계는 대선 상황에 따라 좌우된다"며 "이 대통령과 박 후보가 기본적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지만 대선이 박빙 승부로 갈수록 박 후보 캠프 내부에서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 요구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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