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전 대법관이 갑자기 유명세를 타고 있다. 대검 중수부장 시절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하면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으로 낙인찍어버린 그가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 대선 기구인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어찌보면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새누리당이 보기엔 기억에서 지워버려야 할 '국민검사'를 박근혜 후보는 삼고초려에 버금가는 공을 들여 끌어들였다. 부패정당 이미지를 바꾸는데 이만한 처방도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박근혜나 새누리당 쪽은 '안대희 효과'를 자신하는 분위기로 읽혀진다.'안대희는 새누리당 사람', '부정적 이미지 종결자' 따위의 듣기 거북스러운 반응들도 쏟아지는 모양이다.
반대 진영의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과는 180도 다른 입장을 격하게 쏟아내고 있다. '박근혜 속으로'를 결정했을때부터 짐작은 했겠지만, 몇가지 야당의 공격이 특히 안대희에겐 아플 것 같다. "공천장사 파문을 겪고 있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 영입된 그의 역할은 다름 아닌 박 후보 친인척ㆍ측근 비리 의혹을 은폐하는 것이다.", "국민은 왕년의 국민검사가 정치사건 로비스트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강직 검사의 대명사로 통하면서 35년 동안 한우물을 팠던 안대희가 이런 비판을 예상 못했겠는가. 그럼에도 새누리당 대선 기구의 한 축을 책임지는 자리를 수용한 건 단순하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는 "국민 모두가 바라는 깨끗한 사회, 깨끗한 정부를 만들어보자는 대의를 따랐다"는 말로 정치쇄신위원장 수락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친여당적 발상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안대희의 선택 과정을 뒤쫓아가면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만일 그가 '감투'를 탐냈다면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정부패 척결이 트레이드마크나 마찬가지인 검사 출신 대법관의 몸값은 이미 상종가에 바짝 다가가 있다. 박근혜가 집권하든 야당이 정권을 잡든 안대희는 누구든 쓰고 싶은 유혹의 범주에 들어있는 인물이다. 제1야당 원내대표 조차 '신망받는 인사'라는 표현을 동원하지 않았나. 정치권 러브콜 0순위에 올라있다는 얘기다. 이런 그가 정치쇄신특별위원장 자리를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 정치를 대수술할 욕구를 강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새누리당 당원에 가입하지 않은 것도 어떻게 보면 자신의 뜻대로 정치쇄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떠나겠다는 시그널일 수 있다.
오랜 특수부 검사 생활과 불법 대선자금 수사 등을 통해 정치권의 문제를 꿰고 있을 안대희로선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정치쇄신 대상으로 하필 새누리당을 택한 것도 집권 여당의 정화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자신의 성향도 작용했을 것이다.
박근혜만 링에 올라 있는 건 아니다. 안대희도 시험대에 서 있다. 그의 일차적인 역할은 박 후보와 친인척, 측근들의 비리 의혹을 낱낱이 검증하고 재발 방지책 같은 걸 마련하는 거다. 이게 성공하면 그는 정치권에 또 하나의 기록을 쓰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거대 정당의 쇄신을 일궈낸 일등 공신으로. '박근혜의 얼굴마담'이라는 우려도 깨끗이 불식시키게 됨은 물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안대희가 마음껏 요리할 만큼 새누리당 내부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부분이다. 안대희는 수사권이 있는 검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짱'의 성공 여부는 박근혜도, 새누리당도 아닌 그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본다.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대법관에서 퇴임한 지 두 달도 안돼 특정 정당에 몸을 던진 행위는 어떤 설명으로도 그를 지지했던 국민과 검찰 선ㆍ후배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로펌행을 거부하고 퇴임 후 6개월 동안 '무위도식'한 김준규 전 검찰총장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안대희가 정치권 투신 시점의 부적절함을 상쇄시키는 방법은 하나다. 스스로의 약속 처럼 새누리당을 쇄신시킨 뒤 정치판을 벗어나는 것이다. 국민은 '사심없는 국민검사'를 주시하고 있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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