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장의 연단에 조지 롬니 전 미시간 주지사가 섰다. 그는 오른쪽으로 향하는 공화당을 향해 중도 진영을 포섭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4년 뒤에는 대통령 경선에 직접 뛰어들어 공화당의 진보를 외쳤다.
2012년 8월 30일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는 아들 밋 롬니가 연단에 섰다. 아버지처럼 연설자가 아니라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기 위해서였다. 아직은 절반이지만 아버지의 꿈을 아들이 이룬 감격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전당대회장에서 어느 누구도 조지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았다. 롬니 후보조차 아버지가 날마다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할 만큼 어머니를 사랑했다고 수락 연설에서 언급했을 뿐이며 언론도 조지에서 밋으로 이어지는 롬니 정치 가문을 조명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이 보기 좋고 감동적이란 생각이 한국적 정서만은 아닐 것이다. 얼굴도 보지 못한 케냐 유학생 아버지의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해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정치인이 바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던가. 롬니판 '담대한 희망'은 오바마 대통령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었을지 모른다.
아버지 조지는 자녀들이 자립할 때까지 기다린 뒤, 진지한 토론을 즐기는 막내 아들 롬니를 정치에 입문시키면서 원칙 이외에 다른 것은 주문하지 않았다. 롬니 후보는 2007년 당 대선 경선 출마 때 아버지의 영향을 부인하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는 대선 출마를 아버지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은 것에 비유했다.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는 대통령직을 위한 계주가 아버지에게서 아래 세대인 자신에게 이어진 것이란 얘기였다. 실제로 롬니 후보는 아버지처럼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했고 또 아버지의 급하고 엄격한 기질은 아니지만 그의 야망과 정열은 바통 속에 넣어 물려받았다.
그런 롬니 후보가 지금 아버지를 긍정하지 못하는 것은 공화당이 부친이 말한 방향과 거꾸로 가고 있고 또 그곳 사람들이 부친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는 롬니 후보의 우향우가 강경 보수세력을 포섭하려는 것처럼 보인 게 사실이다. 흔들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모래그림판처럼 당 후보가 되면 중도 온건이라는 롬니 후보의 본래 모습이 나올 것이란 얘기도 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거꾸로 롬니 후보가 보수층에 끌려 다니는 정황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네오콘으로 불리는 신보수주의자와, 보수유권자운동 티파티의 신고립주의자들이 내는 조율되지 않은 이중주다.
롬니 후보는 선거 캠프에 포진한 네오콘 인사들에 의해 미국예외주의를 강조하는 강한 미국을 외교정책으로 내걸었다. 네오콘은 강한 미국을 위해 국방비 삭감을 수용할 수 없다. 예비내각에서 국무장관에 거론되던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가 이념 심사에서 낙마한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이들은 강경하다. 국제문제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을 반대하는 신고립주의자들은 작은 정부와 조세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국방비 삭감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이들이 롬니 후보를 미국의 셔터를 내리는 보호무역주의로 끌고 갈 수도 있다. 이대로라면 롬니 후보가 11월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각 분야에서 방향을 알기 힘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시사주간 타임의 리차드 스텐겔 편집장은 미국 유권자들이 한번도 비즈니스맨에게 백악관을 넘겨준 적이 없다며 그 이유를 대통령은 위험하고 나쁜 선택을 해야 하며, 만약 쉬운 일이라면 대통령 책상에 놓일 까닭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외적인 비즈니스 리더인 롬니 후보에게는 나쁘고 어려운 선택을 하고 아버지의 꿈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두 달 이상 남아 있다.
이태규 워싱턴 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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