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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에세이] 분노는 포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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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에세이] 분노는 포도처럼

입력
2012.08.3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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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가 가을의 초입인데 분노가 영글어 가고 있다. 분노가 포도처럼 영글고 있다. 젊은 세대, 나이든 세대를 넘어서 성별과 직업과 지역을 넘어서 분노가 급속히 자라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절에 존 스타인벡은 당시의 분노를 '분노는 포도처럼'에 담았다. 몰락한 소작농 조드 가족의 유랑을 통해 풍요를 꿈꾸던 자본주의 아래 모든 꿈을 잃어버리고 고통하고 신음하던 약자들의 삶이 묻어난다. 그들의 분노는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였고 헤어날 수 없는 가난에 대한 분노였다. 조드 가족을 삼킨 분노는 여전히 이 시대 속에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통해 분출되고 있다.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자본주의는 새로운 사회적 약자를 양산하고 있다. 무한경쟁의 틀 속에 고통 받고 신음하는 계층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세대와 직업을 넘었을 뿐만 아니라 나라와 이념을 넘어서고 있다. 그야말로 세계적 분노, 전 지구적 분노가 다시 포도처럼 영글어가고 있다. 자본주의 이념의 대척점에서 날 선 견제를 마다하지 않았던 공산주의는 백기를 든 지가 오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결코 마지막 승자라고 샴페인을 터뜨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무한경쟁의 제도는 어느 시대건 고삐가 풀려버린 마차처럼 질주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은 경쟁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고 경쟁 속에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도록 이 세상에 내던져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이 시대의 분노가 절대적 빈곤의 그늘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해도 여전히 배고픔과 목마름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사회경제적 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의 위기와 동일시할 수 없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포도처럼 영글어가고 있는 분노의 뿌리는 차이가 없다는 데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당시에도 한계상황으로 내몰린 조드 가족들이 배고프고 목말랐고 지금도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또 다른 조드 가족과 같은 약자들은 배고프고 목마르다. 오히려 이들의 기근과 허기는 육신의 것과 함께 더 깊은 정신적 정서적 기근이고 허기이다. 상대적 빈곤감은 더 커졌고 정서적 무력감은 더 깊어졌고 정신적 허탈감은 더 넓어졌다. 그래서 분노는 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어떻게 특별한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두를 수 있으며 어떻게 대량 살상을 시도할 수 있을까. 왜 방안에 틀어박혀 세상과 동떨어진 삶 속으로 숨어들까. 자신 속에 차곡차곡 쌓은 분노와 절망이 자신을 소진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만연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들을 격리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이 지켜질 수 있을까.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계의 눈길을 떼지 않는 것으로 우리 자신과 이웃의 행복이 지켜질 수 있을까. 아니다. 단연코 아니다. 우리가 죽어가는 영혼들을 영혼으로 발견하고 영혼으로 품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환상이다. 저들의 분노는 분노이기 이전에 영혼의 두려움과 절규이다. 작가 스타인벡도 그 영혼의 아픔을 들었다. "우리 각자의 영혼은 그저 작은 하나의 조각에 불과해서 다른 사람들의 영혼과 합쳐져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그 울림이 들리는가.

'내가 만일 한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만 있다면/ 나의 삶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만일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의 고뇌를 식힐 수만 있다면 나의 삶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숨져가는 한 마리 물새를/ 다시 그 보금자리에서 살 수 있도록 한다면/ 나의 삶은 정녕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에밀리 디킨스가 가만히 들여다보았던 누군가의 상처와 고통을 우리 모두가 보듬지 않으면 이토록 많은 것을 이루고 소유하고서도 우리의 삶은 헛된 것이 될 것이다.

조정민 온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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