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새누리당 검사' 안대희

입력
2012.08.31 12:06
0 0

'국민 검사.' 국민과 언론은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검사로서의 기개와 강단, 공직자로서의 청렴함을 보여준 안대희 전 대법관을 그렇게 부르며 칭송했다. 적어도 며칠 전 그가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기 전까지, 국민들은 법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대법관 임기를 마쳤을 때는 그가 원로 법조인으로서 사회의 존경을 받는 큰 어른이 되어주길 원했다.

그러나 그는 기대를 저버렸다. 당대 최고의 검사로서 정치권력의 부정부패를 단죄했던 그가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대법관직에서 물러난 지 겨우 48일 만에 특정 정당의 직책을 맡은 것은 충격이었다. 당 쇄신과 박 후보 측근ㆍ친인척 부정부패 근절이 역할이라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런 활동을 통해 박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것이 그의 임무요 목표다. 전직도 아닌 직전 대법관이 특정 정당 대선 후보를 보좌하는 정치인이 된 것이다.

안 전 대법관의 변신에 대한 세간의 엄중한 비판을 재삼 거론할 필요는 없겠다. 국민의 바람이나 기대와 달리, 지금까지 쌓아 올린 개인의 명예와 이미지를 한번에 무너뜨리면서까지 자신이 '차떼기 당'의 오명을 안긴 정당과 손을 잡은 그이니 이제 와 비판을 되풀이 해본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 도대체 그의 새누리당행을 끌어낸 결정적 동인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깨끗한 정치, 바로 가는 나라, 질서 잡힌 나라'라는 박 후보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같아 돕기로 했다고 했다. 하지만 퇴임 직전까지도 "대법관은 모든 공직의 마지막"이라고 말했던 그다. 외국 대학에서 연수를 한 뒤 대선 이후 귀국하려 했던 그다.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만의 하나 정치에 휘말리는 것을 꺼려해 거리를 두려던 그다. 그랬던 사람이 박 후보를 두 번 만난 뒤 마음을 바꿨다. 물론 '통'하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규정하고 떠받치던 모든 가치들을 송두리째 잃고 '반쪽 국민 검사'로 전락하는 위험한 선택인데도 잠깐의 만남과 '통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의 신념과 입장을 180도 바꾸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차라리 현실적 이유를 들었다면 좋았겠다. 법 만으로는 원칙과 정의를 실현하기 어려웠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역시 정치를 통한 제도와 구조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생각은 검사 시절부터 했다, 검사들은 생리상 보수적이고 권력 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대법관 시절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판결은 내리지 않았으며 퇴임 후 정치를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박 후보가 당선되면 내 신념을 실현할 수 있는 일을 맡을 것 같다, 이심전심으로 그런 내락을 받았다 같은…. 새누리당에 입당 원서를 내지 않는 시늉으로 마치 자신이 정치판의 국외자인양 행세할 것이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게 됐음을, 정치를 할 수밖에 없음을 그렇게 당당히 말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모호한 말과 태도로 자신이 아직 정치인이 아니며, 정치도 하지 않을 것처럼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한편으로 권력과 정치판의 생리를 생각하면 안 전 대법관에 대한 실망은 연민으로 바뀐다. '새누리당 검사'로서 그의 역할은 부득불 정치 기득권 세력의 거센 저항과 불만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의 활동과 위상이 강화할수록 역풍의 위력도 세질 것이다. 새누리당이 권력을 잡으면 그런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 그 같은 상황에서 박 후보는 과연 언제까지 그의 우산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가 늘 곧은 일, 바른 말만 한다 해서 항상 지지하고 지원하며 감싸고 돌 수 있을까. 결국 안 전 대법관은 자신의 정치력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 자신의 신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언제든 당을 떠나겠다지만 그것은 나약한 소리다. 정치를 시작했다면, 새누리당행이 신념의 실현을 위한 방편이었다면, 정치판에서 끝까지 살아 남아 자신의 변신에 대한 변명이 결코 변명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새누리당 검사'가 된 '국민 검사' 안대희가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황상진 부국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apr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