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가치 있는 일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죠."
인터넷과 IPTV, 스마트TV, 스마트폰,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6개 매체 22개 채널을 통해 한국어와 중국어로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덩징(29)씨는 한국에 사는 중국인들 사이에선 유명인사다. 조금 과장하면 "덩징의 도움을 받지 않은 중국인을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도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웅진재단 다문화가족음악방송의 중국어시간 진행을 주 3회 맡고 있는 그는 자칭 타칭 '외로움 방지 담당 DJ.' 한국에 온 중국인들이 한국문화의 벽을 넘는 데 사다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그는 3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에 적응하지 못해 낙오자가 되거나 자포자기의 길로 빠지는 걸 막아 한국인과 중국인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덩씨는 다문화가족음악방송 개국 4주년을 맞아 서울 마포구 염리동 디지털 스카이넷 방송국에서 30일 열린 기념식에서 중국인들이 한국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의 융합에 기여한 공로로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이 방송은 중국은 물론 베트남 태국 아랍 몽골 일본 등 8개 언어 프로그램을 통해 다문화가족의 소통과 문화의 생활도우미 역할을 해 청취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집계가 가능한 인터넷 청취자만 7월말 1,80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속을 만큼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2001년 고교 3학년 때다. "HOT 노래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던 때였는데 때마침 제가 살던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의 같은 아파트에 한국인 가족이 이사를 온 거에요. 그들이 주고 받는 한국말이 어찌나 아름답게 들리던지…. '한국말 배우리라' 다짐했죠." 다른 사람에게 말도 잘 붙이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한국아줌마에게 청해 한국어를 조금 배웠다. 한번 얻어 먹는 한국 음식에 매료됐을 땐 한국 거주를 떠올렸다. 내친김에 대학도 한국에서 다니는 걸 목표로 잡았지만 부모가 만류했다. "하는 수없이 근처 대학에 들어가 공부했죠. 그런데 한국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거에요. 이건 아니다 싶어 2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와서 어학당 1년을 마친 뒤 2005년에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05학번으로 편입했어요."
부모의 그늘을 포기하고 뛰쳐나온 만큼 뒷감당은 스스로의 몫이었다. 말이 많이 필요 없는 식당과 PC방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렸다. "어느 순간에 보니까 제가 통역, 번역, 가이드 알바를 하고 있는 거에요." 그 만큼 한국어 실력이 늘었다는 얘기다. 중국서 대학 다닐 때 교내 방송국에서 일한 경험까지 더해지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꿰찼다.
그가 한번 방송을 하면서 틀어주는 노래는 한국노래 3, 4곡을 포함해 모두 12~14곡. 1시간 반 분량의 방송 준비를 위해 하루를 몽땅 털어 넣어도 모자라던 게 지금은 2시간이면 충분할 정도가 됐지만 변하지 않는 철칙 하나가 있다. "한국 노래는 최신곡으로, 중국 노래는 옛 것으로 해야 돼요." 향수병에 시달리는 이들에게는 위로와 힘을 주고, 이국 땅에서의 적응에 최신 노래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이 법칙을 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게시판을 보면 '제 방송으로 중국어 공부 잘 하고 있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어요. 이분들을 위해 이젠 중국 최신가요도 좀 틀어야 할까 봐요."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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