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명의 교수들이 가입한 전국교수공제회의 실질적 운영자가 공금 500억원 이상을 횡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교수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공제회에는 향후 회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자금의 절반밖에 남아있지 않아 저축은행 예금 인출 사태와 비슷한 대규모 인출 사태까지 우려되고 있다.
수원지검 특수부(부장 이주형)는 31일 전국교수공제회 총괄이사 이모(60)씨를 허가 없이 자금을 수신한 뒤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2000년부터 최근까지 전국의 교수 수천 명이 맡긴 적금과 정기예금 수천억원 중 500억여원을 자신의 통장에 입금하거나 부동산 구입에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국교수공제회는 전임강사 이상 교수와 배우자가 매월 15만4,000~46만2,000원을 적금으로 납입하면 정년퇴직 때 20% 이상의 이자를 지급하고, 5,000만~1억5,000만원의 정기예금을 1~3년간 들면 시중은행보다 2배가량 높은 7.47~9.35%의 연리를 주는 조건으로 자금을 유치했다.
검찰 조사결과 사업가 출신인 이씨는 한국교직원공제회를 모방해 1998년 전국교수공제회를 만들었다. 2000년 1월부터 모 대학 총장을 지낸 A씨를 명목상 회장으로 내세워 본격적인 자금 유치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전국교수공제회는 군인공제회나 과학기술인공제회 등과 달리 특별법에 근거한 법인도 아니고, 예금이나 적금 등 자금 수신을 위한 금융감독원의 허가도 받지 않은 채 10년 넘게 유사수신행위를 했다.
이씨는 수사가 시작되자 236억원 상당의 부동산 4건과 자신의 통장에 있던 48억원을 공제회에 반납했지만, 검찰은 공제회가 예금이나 적금을 회수하지 못한 전국의 회원 4,000여명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이 3,000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공제회에 현재 남아있는 자금은 1,000억여원으로 이씨가 횡령한 500억여원을 합쳐도 약 1,500억원이 부족하다. 검찰은 이 돈도 이씨가 빼돌렸거나 다른 사업 등에 투자하다 손실을 낸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또 이씨의 부인과 아들 등 가족이 공제회 운영에 개입한 정황을 포착,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이씨가 실질적 운영자라 공제회의 다른 이사나 직원도 횡령 사실을 알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제회 측은 수신 중단 및 인출 동결 등 대규모 자금 인출 사태에 대비한 계획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지역별, 대학별 피해자 대표들로 구성된 비상기구가 공제회 소유 부동산 처리 및 잔여재산 분배 문제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할 방침이다.
하지만 공제회에 가입한 교수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횡령 사실이 알려지자 공제회에는 교수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쳤고, 인터넷 홈페이지는 접속이 폭주해 다운됐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대학의 한 교수는 "어렵게 돈을 모아서 납입했는데 횡령 소식을 듣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수원=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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