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이란의 핵개발을 막겠다고 거듭 약속하지만 나는 믿기 힘들다. 레이건도 약속과 달리 파키스탄의 핵무기 보유를 막지 못했고, 클린턴 역시 북한이 같은 짓을 하는 걸 막지 못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지난달 이란 공습을 주장하는 익명의 '정책결정자'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는 "오바마는 자신이 내년 봄 백악관에 있을지조차 알지 못한다"며 이스라엘이 미국과 조율을 거쳐 이란 공습에 나설 것이라는 항간의 추측을 일축했다.
기사를 읽은 이스라엘 국민은 이 정책결정자가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임을 금세 알아챘다. 인터뷰에 자주 등장하는 면역구역(immunity zone)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국제사회의 군사개입으로도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할 수 없을 만큼 핵프로그램이 진전된 단계로 들어섰음을 뜻하는 이 말은 바라크 장관이 즐겨 쓰는 용어다. 그는 인터뷰에서 "막강한 공습 능력을 갖춘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란은 아직 면역구역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우리에게는 이란이 벌써 면역구역에 들어선 것일 수도 있다"며 공습의 당위성을 재차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습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우세해지는 가운데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공습 단행 여부를 결정할 핵심인사로 바라크를 지목했다. FP는 8월23일 기사에서 "바라크가 네타냐후보다 훨씬 더한 매파"라는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의 말을 전하며 "전문가들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예측해온 지난 2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강경파 대변자는 바라크 장관"이라고 평가했다. 세간에서는 11월 미국 대선 전 공습 가능성을 시사하며 대 이란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강경파의 선봉장으로 여기지만 막후의 실력자는 바라크라는 것이다.
올해로 70세인 바라크의 행적을 아는 이라면 이런 평가에 의아해 할 수도 있다. 극우 리쿠드당을 이끌어온 네타냐후와 달리 바라크는 오랫동안 중도좌파 노동당의 대표 정치인으로 온건한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특히 총리 겸 국방장관이었던 2000년 레바논 남부를 22년간 점령했던 이스라엘군을 철수했고, 팔레스타인과의 오랜 갈등을 풀기 위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과 캠프데이비드 협상을 시작했다.
FP는 그러나 바라크가 이스라엘 건국 이후 30년간 집권해온 노동당의 지분을 가진 기득권층이자 무수한 전쟁과 반테러작전을 지휘해온 엘리트 군인 출신임을 상기시키며 "그가 앞장서 군사행동을 주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전직 관료는 "네타냐후가 유대국가 지도자라는 역사적 소명에 심취해 있다면, 바라크는 목적과 위험을 냉철히 따지는 분석가"라고 FP에 말했다. 바라크가 정적 관계인 네타냐후의 입장을 적극 지지한 것이 강강파에 힘이 실리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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