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다녀왔다. 사람이 사는 섬과 무인도를 합쳐 무려 1,004개나 된다하여 이곳 전남 신안사람들은 이 땅을 천사의 섬이라 부른다. 서양 회화 속에 등장하는 날개를 달고 무지개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들이 모여 사는 그들만의 천상의 땅이 아닌, 주름진 손으로 바다와 갯벌을 일구고 자연이 내린 볕을 이용해 소금을 만드는 사람의 땅. 그리하여 1,004개의 섬이 흩어져 있지만 함께 어깨동무 어우러져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는, 그런 의미의 천사의 섬 말이다. 섬은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다. 길은 꼬불꼬불 이어져있고 밤이 되면 차량의 소음 대신 풀벌레가 울었다. 물속에서도 울음소리가 들렸다. 민어의 울음소리라 한다. 사람들과 아교처럼 단단한 민어고기를 먹었다. 하늘에 별만 가득 보였다.
여러 섬을 돌아보았다. 섬을 다닐 때 마다 매번 느끼는 것은, 만나는 사람마다 너나 할 것 없이 갯벌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갯벌이야 말로 하늘이 내린 진정한 보물임을 몸으로 느끼며 살고있다. 사람들은 평생 갯벌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변화를 보고 자라왔고, 뻘이 만들어 내어주는 다양한 먹거리를 먹으며 아이들을 키워왔다. 그렇게 살아 왔기에 깨끗하게 보이는 콘크리트 구조물보다 저 탁한 갯벌 진흙이 사람살이, 저자거리와 같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체득 해냈다. 그래서 온 바다의 생명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환경재앙인 적조를 이기는 생명력이 내가 자란 신안 땅의 저 갯벌, 저 진흙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더욱 감사하게 여겼다. 뻘이 곧 삶이고 생명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일제시대 왜놈들의 총 칼 앞에서도 죽은 듯 말이 없이 묵묵히 참고 있다가도 억누르고, 짓누르면 일어서서 몸을 던지고 투쟁해 온 암태도, 하의도의 농민쟁의의 기질은 그냥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닐지라. 이 땅과 섬이 불굴의 저항의 땅이 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신안의 큰 섬들은 다리를 놓아 목포에서 배를 타고 가지 않아도 차량으로 쉽게 오 갈 수 있게 되었다. 다리가 놓임으로 사람들은 생활공간이 더 넓어지고 많은 것들을 편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원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이 찾아온다. 관광객이 많이 올수록 섬은 물질이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물질이 풍요로운 만큼 그 반작용도 생기는 법. 개발이라는 이름의 공룡의 그림자가 이 섬에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공룡은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며 사람들을 달콤하게 유혹한다. 알록달록 영문 이름의 펜션은 늘어가고 길은 자동차 체증으로 야금야금 넓어지려 한다. 해안의 백사장과 소나무 절경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 언제부터 황금광(엘도라도)을 찾아 서부로 떠 다니던 강남의 고급 승용차가 이곳 황금해안에 리조트를 차리고 점령해 버렸다. '성공한' 리조트의 명성 덕분에 더욱 더 많은 리조트 업자들이 개발 프로젝트 서류를 들고 섬을 방문하려 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땅이 자연 그대로 남아있고 먼 앞날을 생각하는 현명한 사람들 덕분에 아직까지 섬은 큰 외상을 입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공룡은 쉽게 이 섬을 버리고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룡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먹어 삼키기 전에는 절대 물러나지 않는 습성이지 않은가.
개발이라는 공룡이 아니어도 섬은 위태롭다. 섬에 아이들이 없다. 천사의 섬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천사의 섬은 엄밀히 말해 천사가 없는 거와 마찬가지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천사 없는 천사의 섬. 앙꼬 없는 찐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큰 섬마다 폐교가 한 두 개쯤은 기본이다. 운동장은 뛰 놀던 아이들 대신 잡초만 무성하고 교실 유리창은 깨어져 뒹군다. 황량한 풍경이다. 왜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도시에만 몰려 사는 것일까. 어른들의 책임이다. 자기들이 살기 편해서 도시로, 도시로 몰려간다. 그렇게 도시 변두리에 몰려 살면서 또 괴롭고 괴로워하며 삶을 지긋지긋하게 여긴다.
아이들이 없으니 어른들도 기운이 없다. 아이들은 섬의 미래다. 천사의 섬, 1,004개의 보물섬에 갯벌의 강인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길, 그날을 하루 빨리 기다려본다.
박근형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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