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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 제국 다스린 딸들 있었기에…칭기스칸의 세계정벌 가능했다

입력
2012.08.3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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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

잭 웨더포드 지음ㆍ이종인 옮김ㆍ책과함께 발행ㆍ432쪽ㆍ1만8000원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정복했던 제국은 칭기스칸의 몽골이다. 푸른 초원에서 양이나 치던 몽골 고원의 자그마한 나라가 어떻게 자기보다 영토가 100배나 크고 1,000배나 많은 군사력의 나라들을 정복해나갈 수 있었을까.

미 매칼래스터대 인류학과 잭 웨더포드 교수는 그 이유를 쉬지 않고 전진하는 몽골 기병의 속도전이나 잔혹한 학살의 공포가 아닌 칭기스 칸의 딸들에서 찾았다. 저자는 "칭기스칸의 딸들이 없었다면 몽골 제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칭기스칸이 영토 확장에 매진할 수 있었던 건 정복한 영토를 다스리며 제국을 유지한 그의 딸들이 있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칭기스칸의 정치 전략과 전술, 정신적 세계관에서 남성과 여성의 균형은 가장 핵심적인 원칙이었다. 자신의 성공이 남성적인 하늘과 여성적인 땅의 도움이라고 믿은 칭기스칸은 남과 여, 음양의 일치를 누구보다 중요시했다. 그는 "집안을 잘 단속하는 자는 영토를 잘 단속할 수 있다"며 자기 딸들과 주위의 여자들의 능력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몽골이 북유럽부터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에 걸쳐 광대한 제국의 외연을 맘껏 확장할 수 있었던 바탕은 제국의 내부가 안정됐기 때문이다. 종교 복식 언어 관습 등이 제 각각이던 스텝 지역의 씨족들을 몽골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낸 것이 그의 네 딸들이었다.

칭기스칸의 네 딸들은 결혼동맹을 통해 제국의 운영에 본격 참여하게 된다. 칭기스칸의 결혼동맹은 보통의 신부가 결혼과 함께 출가외인이 되어 역사에서 사라지는 여느 정략결혼과는 달랐다. 딸들은 결혼을 통해 해당 씨족의 지배자가 되어 몽골 제국의 성공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 칭기스칸은 결혼과 함께 사위는 자신의 전장으로 데려와 전투를 벌이게 하고, 대신 자신의 딸을 그 씨족의 우두머리로 만들어 지역을 관할케 했다.

칭기스칸이 고비 사막 때문에 중원을 정복할 엄두를 못 내던 때가 있었다. 칭기스칸은 고비사막의 남쪽인 옹구드 족에 딸 알라카이를 시집 보내 그 지역을 병참기지로 키워내면서 중원에 도전할 힘을 얻었다. 이렇듯 요충지로 시집을 간 딸들은 남편 씨족의 통치자로 자리매김해 몽골 제국의 유지와 확장에 기여했다.

네 딸들의 '파견지'는 몽골 고향 땅을 둘러싼 방패 군단의 모양새다. 그들은 옹구드, 위구르, 칼루크, 오이라트 왕국을 다스리며 국경 경비대 역할을 했고, 몽골 제국을 단단히 보호했다. 그 딸들이 통제하던 시절 실크로드는 몽골족의 고속도로였다. 수천 년을 통틀어 처음으로 단일 세력이 실크로드 전 구간을 장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몽골 왕비들의 일관된 통치 아래 실크로드는 전성기를 누렸고, 그 실크로드는 제국에 군사적 번영과 경제적 부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칭기스칸이 죽고 난 뒤 세상은 바뀌었다. 칭기스칸에게는 똑똑한 딸들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방탕하고 욕심 많은 아들도 여럿이었다. 그의 못난 아들들은 누이들을 숙청하고 그 땅들을 빼앗았다. 그들은 잔혹한 학살과 집단 강간 등을 동원해 더욱 악랄하게 누이의 영토를 강탈했다. 딸들이 스러져 가고 방탕한 아들이 지배한 몽골 제국은 분열되기 시작했고, 결국 쇠락한 후예들은 풍요로운 중원에서 쫓겨나 다시 스텝으로 숨어들어야 했다.

몽골의 위대한 여인 이야기는 칭기스칸이 여인으로 현신했다고 전해지는, 15세기 몽골을 다시 통합한 만두하이 왕비 이야기로 이어간다. 뛰어난 여걸 만두하이는 몽골의 기치를 높이 쳐들어 잊고 있던 민족의식을 널리 일깨웠다고 전해진다.

우린 왜 이런 몽골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진작 몰랐던 걸까. 칭기스칸 사후 아들들이 누이를 숙청한 후, 누군가에 의해 몽골의 왕조사인 <몽골비사> 에서 딸들에 대한 이야기가 완전히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저자는 역사에서 지워진 딸들의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이곳 저곳에서 그러모았다. 몽골 민요, 설화, 현지인 인터뷰 등을 통해 <몽골비사> 에서 삭제된 페이지들을 재구성했다. 중국 궁정의 외교보고서, 이슬람 역사서, 아르메니아 왕실 연대기, 마르코 폴로 같은 상인들의 회고록, 도교 사원이나 유교 사원의 비석 등에서 파편적인 정보들을 모아 잃어버린 이야기를 복구했다.

칭기스칸의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 수년 간 계절마다 몽골을 방문했던 저자의 노력은 책 이곳 저곳의 생생한 표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화인류학자로서의 스토리텔링 솜씨 덕분에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듯 읽는 재미까지 더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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