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눈 가리고 아웅 말고… 장수장학회 문제 털어야 미래로 간다"
벌써 50일째다. 이정호(51) 부산일보 편집국장은 매일 오전 7시 반 부산일보 현관문 앞에 세운 '열린 편집국장석'으로 출근한다. 말이 좋아 편집국장석이지 작은 책상 하나 덩그러니 가져다 놓은 게 전부다. 코앞에 있는 부산일보에 들어서면 벌금 100만원을 내야 한다. 부산일보 지분 전부를 가진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 문제를 두고 사측과 마찰을 빚은 지 9개월 되던 7월 11일, 법원은 사측 의견을 받아들여 그렇게 판결했다. 그날 이후 그는 '거리의 편집국장'이 됐다.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강타한 지난달 28일. 부산지역 모든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휴교했던 이날은 열린 편집국장석도 임시 휴업했다. 부산일보 인근 전통찻집에서 만난 이 국장은 "강제 헌납에서 출발한 정수장학회는 사회에 환원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정수장학회의 실질적 소유주로 알려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 대해선 "본인과 정수장학회가 관련 없다고 말하지만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준 아버지가 나는 이제 회사와 상관없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면서 "역사 인식은 20년 지난 과거 유신시대에 꽁꽁 매여 있다"고 말했다.
정수장학회의 전신은 부산 지역 기업인 고 김지태씨가 만든 부일장학회다. 1961년 5ㆍ16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제 헌납하게 한 뒤 1982년 정수장학회로 이름을 바꿨다. 박근혜 후보는 1995년부터 10년간 이사장을 역임했고, 그 이후 박 후보 측근인 최필립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사측과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04년부터다. 1979년 10ㆍ26 사태 이후엔 칩거했던 터라 부딪힐 게 없었고, 박 후보가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해 초선 국회의원이 됐을 때도 엮일 일이 드물었다. 이 편집국장은 "그때만 해도 비중이 대구의 한 지역구 의원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4년 박 후보가 한나라당 대표가 된 뒤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기사를 좋게 쓰라는 지시가 사측에서 종종 내려왔고, 사실상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가시화한 지난해부턴 그 지시가 더욱 노골적이었다"고 했다. 편집국은 '편집권은 외부와 경영진의 부당한 압력과 간섭에 의해 침해 받지 아니하고, 독자의 알 권리와 사회정의를 위해서 올바르게 쓰여야 한다'는 편집권 조항을 근거로 그런 지시를 거부했다.
오히려 "박근혜 후보가 유력 대권후보로 떠오른 마당에 그의 그늘인 정수장학회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1월 18일자 부산일보 1면에 실린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촉구 기자회견 기사는 그런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같은 달 30일 사측은 정수장학회 기사를 문제 삼아 윤전기를 세웠다. 이날 신문은 나오지 못했다.
부산일보는 이후에도 정수장학회 관련 기사를 꾸준히 내보냈다. '정수장학회를 공공의 자산으로'란 기획기사는 올해 2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 특별상도 받았다. 그러나 사측은 컴퓨터, 책상을 압수하고 유선전화를 끊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한편 끊임없이 이 편집국장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사측이 징계 내린 사유가 된 기사가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건 참으로 모순된 일"이라고 씁쓸해했다.
올해 2월 10일 소송전에선 사측이 이 편집국장에게 제기한 '편집국장 직무집행 중지 가처분 신청'은 거절당했다. 그러나 7월 11일엔 사측 의견인 '직무정지 및 출입 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이 편집국장은 "공교롭게도 7월 11일 하루 전인 10일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 날"이라며 "같은 사안을 두고 상반된 결과가 나온 것은 사법부가 유력 대선후보의 눈치를 본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벌써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부산일보 노사 갈등은 좀처럼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측은 되레 고삐를 틀어쥐고 압박하는 모양새다. 최근엔 정수장학회 관련 보도에 핵심 역할을 한 정치ㆍ사회부장을 고소했다. 업무 방해가 그 이유다. 정치ㆍ사회부장은 징계(정직 6개월)를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계속 일을 봐왔다. 부산일보 노조는 지난달 28일 사장 퇴진투쟁을 결의했다. 부산일보 노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사측은 늘 경영위기론을 들고 나온다.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 지역 독자들이 빠져나간다는 게 사측 논리입니다. 정수장학회에 대한 문제제기, 편집권 독립 문제 때문에 부수가 하락했단 명확한 증거도 없거든요. 코미디죠."
이 편집국장은 박근혜 대선후보에게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고, 좀 더 책임 있는 행보를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5ㆍ16 쿠데타를 "아버지의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언급한 그의 역사인식에 관해선 "정치인은 미래지향적이어야 급변하는 사회에 발맞출 수 있는데 박 후보는 벌써 20년도 지난 유신시대의 유업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거리의 편집국장은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열린 편집국장석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특정 정치권력과 엮인 정수장학회가 언제든지 부산일보 편집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편집국장은 편집권 독립을 '종자 씨앗'에 빗댔다. "금쪽같은 자식이 춘곤기에 굶주려도 농부는 절대 종자씨앗을 건드리지 않아요. 당장 배고프다고 종자 씨앗으로 밥 해먹으면 농사는 무엇으로 짓겠습니까. 지금 힘들다 해서 편집권 독립을 져버리면 부산일보도 언론으로서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겁니다."
부산=글ㆍ사진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 길고 질긴 악연의 뿌리는…
'독자가 주인입니다. 최고 신문 부산일보.'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일보 사옥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그러나 정작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정수장학회다. 장학회 이사장이 부산일보 사장을 임명한다. 사장 자리에 계속 앉아있으려면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지 뻔하다. 이정호 국장은 "이명관 현 사장을 포함한 이전 사장들은 장학회의 실질적 소유주로 알려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기사를 키우거나 부정적인 어휘를 빼달라고 편집국에 왕왕 지시해왔다"고 말했다.
갈등의 씨앗은 정수장학회의 태생적 한계와 맞닿아있다. 1960년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내려온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구사범 동창인 당시 부산일보 주필 황용주와 자주 어울렸다. 부산일보에도 번번히 놀러 왔다고 한다.
그때 그는 부산일보가 보도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물 속에서 떠오른 김주열 열사 사진 한 장이 어떻게 4ㆍ19 혁명에 불을 지폈는지 생생히 지켜봤다. 그래서인지 이듬해 5ㆍ16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는 언론을 자기 발아래 놓길 원했다. 부일장학회 문제도 여기서 비롯했다.
부산 지역 기업인 고 김지태씨가 만든 부일장학회는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현 부산MBC), 한국문화방송(현 MBC)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2년 탈세 등을 빌미로 부일장학회를 강제 헌납하게 했다. 부일장학회는 '5ㆍ16 장학회'로 개명했다가 1982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딴 '정수(正修)장학회'로 명칭을 바꿨다. 현재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지분 100%와 MBC 지분 30%, 경향신문 사옥 터 등을 갖고 있다.
정수장학회 측은 장학회가 사회환원이 잘 돼 있다고 말을 하지만 정부가 내린 판단은 다르다. 2005년과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2007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부일장학회가 강제 헌납됐으며, 이후 정수장학회가 사유재산처럼 관리돼 왔다고 결론 냈다.
정수장학회, 박 후보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를 쓰지 말라는 부산일보 사측의 편집권 간섭과 여기에 맞선 기자들의 편집권 독립 투쟁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부산일보 사태를 부른 편집권 독립 문제에 관해 정수장학회의 의견을 묻고자 3차례 전화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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