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무심하시지….”
‘바람 맞고 물 먹은’ 남녘 땅의 상처는 깊고 컸다. 남쪽의 8월 끝자락(28~30일)은 치떨리는 악몽이었고, 전기도 전화도 끊긴 불면의 밤을 지샌 주민들은 악몽보다 더 처절한 현실에 통곡했다. 30일 하루 종일 갈지(之)자 행보를 하던 제14호 태풍 덴빈은 15호 태풍 볼라벤의 강풍에 휘청거린 남쪽 곳곳에 ‘물폭탄’을 터뜨려 큰 내상(內傷)을 입혔다.
겹태풍에 호남 물난리
이날 오전 11시쯤 전남 목포시 상동 종합버스터미널 앞. 태풍 덴빈이 시간당 40㎜의 집중호우를 쏟아내면서 왕복 6차선 도로는 어른 허리까지 차오를 정도로 물바다로 변했다. 인근 하천이 범람한 데다 하수구까지 역류하면서 1m 가량 물이 차오른 것이다. 갓길에 주차돼 있던 차량 50여대는 손쓸 겨를도 없이 물에 잠겼고 인근 주택 1,900여 채도 침수됐다. 목포 시내가 물에 잠긴 것은 1999년 여름 이후 13년 만이다. 군산과 정읍, 부안 등에서도 200㎜ 안팎의 비가 내려 저지대 주택과 도로의 침수 피해가 속출했다.
전남도 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연중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백중사리까지 겹쳐 침수피해가 많이 생겼다”며 “볼라벤 피해와 함께 집계하다 보면 그 규모가 크게 늘 것 같다”고 말했다.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덴빈은 순식간에 도심 교통망을 마비시켰다. 오전에만 무려 172.9㎜의 비가 내린 목포는 한때 저지대 도로 교통이 전면 통제됐고, 총 길이 10.2㎞ 의 대전 갑천대교 하상도로도 전체 진출입구 50곳에 차량출입이 차단됐다. 청주 무심천과 전주천 등 주요 지방하천의 하상도로도 수위가 통제선을 넘으면서 차량통행이 통제됐다.
영산강 등 위험수위까지 차올라
집중호우 영향으로 홍수와 산사태 특보도 잇따라 주민들이 대피하는 난리를 겪었다. 이날 오전부터 영산강 지류인 황룡강 유역 광주 광산구 도산동 장록교 인근 선암지점이 위험수위를 넘어서면서 인근 주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상류지역의 주암댐에서 댐 범람을 막기 위해 초당 500톤 가량의 물을 흘려 보내며 방류를 멈추지 않은 탓이다. 동진강 유역인 전북 정읍 신태인지점에도 홍수주의보가 내려지는 등 위기상황이 계속됐다.
과수농가는 망연자실
28일부터 사흘째 정전사태(4,300여 가구)가 계속되고 있는 전남 해남과 진도에선 집중호우로 복구작업이 늦춰진 데다 식수와 생활용수난까지 겹치자 주민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주민들은 “난민생활이 따로 없다”며 아우성이다. 박모(53ㆍ해남군 황산면)씨는 “전기가 끊기면서 물까지 떨어져 밥 지어 먹을 물도 없을 정도”라며 “물폭탄을 맞고 물난리를 겪고 있는 이 상황에 쓴웃음만 나온다”고 말했다.
정전도 잇따라 무안군 무안읍 8,000곳, 영광군 묘량면 5,000곳, 광주 광산구 삼도동 5,000곳 등 2만4,000곳의 전기 공급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볼라덴의 직격탄을 맞은 과수농가들은 덴빈이 또 다시 쏟아낸 강한 비바람에 그나마 남아 있던 과실들이 떨어져 나가자 치를 떨었다.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서 3만㎡의 사과 농사를 짓는 이규범(65)씨는 “숨쉴 틈 없이 불어 닥치는 태풍에 그나마 붙어있던 사과가 다 떨어지고 멍들어 올해 농사는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종합
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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