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근심은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한 각박한 세상이 되었음이다. 울울한 그 회포는 가슴에 가득한데 물어도 아는 사람 전혀 없어 처자식과 산업을 다 버리고 팔도강산을 떠돌며 인심 풍속을 살피더니, 도덕이 없고 사나워진 인심을 달리 치유할 길이 없는 세상이 되었더라. 기댈 곳 없는 세상 사람들은 천명을 돌아보지 않고 괴이한 참서 예언서 들추며 말하기를, 저런 난리 만나면 소나무 숲으로 피신해야 화를 면했고 이런 난리 때에는 집 안에 숨어야 이로웠다 말한다. 벼슬을 팔고 사는 세도가들도 한마음으로 궁궁촌(弓弓村)을 찾고 돈과 곡식을 쌓아놓은 부자들도 한마음으로 궁궁이며 패가망신하여 떠돌며 빌어먹는 사람들까지 궁궁을 찾아 헤매는구나. 소문에 미혹한 자들은 깊은 산속으로 궁궁촌을 찾아가거나 서학에 입도하여 각자의 이익에 따라 옳고 그름을 다투는데, 이미 하늘님이 제 마음에 내려와 계시나니 먼 데서 찾지 마라. 요 순의 다스림이나 공자 맹자의 가르침으로도 이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인즉 그 누구도 믿지 말고 네 속의 하늘님을 모시어라. 사람은 하늘을 하늘은 사람을 모시고 사람은 사람을 서로 모시느니라.
그 말 저 말 다 하자니 말도 많고 글도 많아, 다 함 없는 그 이치를 불연기연(不然其然) 살펴내니 다 함 없는 우주 속에 다 함 없는 내가 있다. 마음이여! 본래 모양 없고 보이지도 않는 것이라 비어 있음 같도다. 만물에 응하여도 자취가 나타남이 없는 것이로다. 하지마는 이 마음을 닦아야만 하늘 덕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요 하늘 덕이 밝아지면 이가 곧 도이니라. 우리가 도를 깨닫고 이루는 것이 하늘님 덕에 있는 것이지 결코 다른 사람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 도를 이루는 것은 하늘님의 가르침을 믿는 것에 있으며 결코 한갓 공부하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이 도는 가까이 있는 것이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정성에 있는 것이지 구하는 데에 있는 게 아니다. 만물이 생기기 이전이나 만물이 생긴 이후나 그 이치에 있어서는 서로 같은 것이로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을 아우르는 근본 이치를 밝힌 도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결코 멀리 있지 아니하고 우리 살림 속에 있는 것이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계절이 일정한 차례가 있어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바뀌고 바뀌는데 이는 어찌하여 그리되는 것인가. 하늘의 무궁한 섭리에 의한 것이로다. 어린아이는 어리고 어려서 말을 못하여도 오히려 자기 부모를 알아보건만 세상 사람들은 어찌하여 자신이 태어난 생명의 근원인 하늘님을 아지 못하는가. 성인이 이 세상에 태어남이여, 황하의 물이 천년에 한 번 맑아지는구나. 성인이 나실 운이 제 스스로 회복이 되는 것인가. 황하의 물이 제 스스로 알아서 맑은 물로 변하는 것인가. 하늘의 섭리에 의하여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로다. 밭을 가는 소가 농부의 말을 알아듣고 농부가 부리는 대로 일을 하는구나. 이 소는 인간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마음이 있어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것 같도다. 그러니 사람보다 훨씬 힘이 센 소가 사람의 부림에 대항할 수 있는데도, 어이하여 대항하지 않고 사람이 부리는 대로 일을 하는 어려움을 스스로 겪으며 종국에는 죽임을 당하는가. 이는 다름 아니라 모두 하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까마귀 같은 미물도 어린 시절 어미가 먹이를 날라주던 것과 같이 늙은 어미 까마귀에게 먹이를 물어주는 반포(反哺) 은공을 행하나니 저들도 효도와 공경을 역시 아는구나. 봄이 되면 어김없이 제비가 주인의 집으로 날아오니 그 주인의 집이 아무리 가난해도 역시 돌아오고 또 돌아오는구나.
천황씨는 어떻게 최초의 임금이 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문명도 임금도 없었다니 어찌된 노릇인가. 세상에 부모 없는 자식이 있을 수 없으니 그를 낳아준 부모가 있었기에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났을 것이라. 천황씨는 최초의 임금이고 최초의 스승이니 임금은 법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스승은 사람들에게 예를 가르쳤다. 그러나 최초의 임금 천황씨는 그에게 자리를 넘겨준 임금이 없었거늘 어디서 법을 전수받았으며 어디서 예를 배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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