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만 주고는 끝이다. 이후 저작권료는커녕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알 길도 없다." "중국 인쇄소에서 한국 책을 빼돌려 로고까지 똑같이 카피해 책을 만들어 파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국내 출판 시장은 경기 침체에다 독서 인구 감소로 초판 2,000부가 안 팔리는 책이 수두룩하다. 책을 내면 낼수록 손해만 늘어가는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출판사들이 늘고 있다. 침체된 한국 출판시장의 활로는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다. 세련된 디자인과 콘텐츠의 한국 책이 각광을 받으며 중국은 한국 도서의 최대 저작권 수출국이 됐다. 그런데 중국에 한 번이라도 저작권을 수출해 본 적이 있는 국내 출판인은 한결같이 저작권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중국 서점에 가면 그림동화에 특정 스티커가 붙어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게 진본이라는 증거입니다. 워낙 불법복제가 판을 치니 그런 조치까지 하는 거죠." 민음사 계열 어린이책 출판사 비룡소의 김은하 편집장은 만화로 된 동물행동 시리즈 '스탑'과 '엄마와 함께 보는 성교육그림책' 등을 중국에 수출했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시장에 진입해 더 많은 책을 소개할 계기를 얻었다는데 의의를 두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램그램 영문법' 등 베스트셀러 영어교재를 수출한 사회평론의 유경열 본부장 역시 "중국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영어유치원 등의 학습교재 시장이 커져 큰 기대를 하고 있다"면서도 "책을 직접 수입하기보다 저작권을 사들여 자기들이 출판하려는 경향이 강해 수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저작권을 중개하는 캐럿코리아에이전시의 백은영 대표는 "샘플북을 달라고 가져가 베껴 책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며 "중국 책을 내려는 한국 출판사 역시 번역부터 해놓고 중국측과 접촉했다가 다른 출판사와 계약했다는 대답에 망연자실한 경우를 여럿 봤다"고 말했다.
아울북의 '마법 천자문', 한솔이나 교원의 전집과 학습지물, 두앤비컨텐츠의 '웃지마! 나는 영어 단어책이야' 등도 중국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지만 출판사들의 표정은 떨떠름하다. 팔린 만큼 저작권료 계산이 되지 않아 결국 중국 출판사 좋은 일만 시켜준 셈이 됐기 때문이다.
중국과 출판 거래를 할 때는 저작권 문제를 투명화하는 것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다. 아예 중국 출판사와 합작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블루래빗의 이순영 대표는 "수작업이 많은 유아책을 주로 내 80~90% 가량 중국에서 제작하고 있다"며 "양국 공동편집을 늘려가면서 저작권이나 이해관계 조율 등의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며 이런 작업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지경사 김병준 대표 역시 "중국의 백설공주는 거의 한국판일 정도로 한국 출판물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며 저작권 상황 역시 차차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출판문화협회는 중국이 저작권 보호를 규정한 국제협약인 베른조약에도 가입한 만큼 국제출판협회(IPA)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출판인 교류가 활발해지면 저작권 거래의 문제점 등을 조정ㆍ해결해가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쉽지 않다. 중국은 출판물의 콘텐츠나 디자인, 가격 등을 정부가 통제한다. 출판시장의 작동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른 데서 생겨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는 당분간은 어려워 보인다.
베이징=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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