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뉴스가 있다. 채소값이 올라 식탁물가가 비상이라는 기사다. 2,600원 하던 배추가 3,700원 하고 2,200원어치 상추가 4,880원을 줘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깻잎과 호박은 두 배로 올랐다고 숫자로 퍼센트까지 나열한다.
그런데 진짜 이런 가격 때문에 서민 식생활에 비상이 걸릴까? 아니다. 작년 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김치소비량은 1인당 연 28kg으로 4인 가족이면 한 달에 9.3kg꼴이니 배추 네 통쯤 된다. 1주일이면 배추 한 통을 먹는다. 젓갈과 파, 생강 고춧가루 등 부재료가 있지만 일주일에 4,000원도 안 되는 배추값 인상이 문제될 리 없다. 호박이나 깻잎, 상추도 소비량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큰 문제가 아니다.
9월말까지 지켜봐야겠지만 올해는 쌀이 여물어야 할 시기에 햇볕이 쨍쨍 나지 않고 비 내리는 날이 많아 쌀 작황도 예년보다 나쁠 수 있다. 그러면 또 쌀값이 오른다고 식탁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1인당 쌀 소비량은 작년 기준 하루 195g으로 밥 두 공기가 채 안 된다.(2012년 2월 통계청 발표) 쌀 한 가마니면 4인 가족이 100일 넘게 먹는다. 쌀값이 올라봐야 가계에 미치는 부담은 생각보다 작다. 그런데도 가물면 가문대로, 홍수가 나면 홍수가 나는대로 기상재해만 생겼다 하면 식료품 물가가 비상이란다.
관료들이 책상에 앉아 수치로만 보고 퍼센트로만 따지기 시작하면 식료품 가격 인상이 큰 것처럼 보여서 정책당국이 중국에서 값싼 배추니 마늘이니 수입한다 하여 그나마 소출이 덜 나온 걸 가격으로 만회해보려는 농민들을 낭패에 빠지게 한다.
실상 서민가계를 위협하는 것은 이런 식품류가 아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가스 버스 전기요금 같은 공공요금의 인상이자 무엇보다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집값이 문제다.
우리나라 가구당 월평균소득은 작년 기준 384만원인데 평균 주택가격은 1억1,800만원이다.(한국은행 통계청 발표) 월평균소득을 가진 이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3년은 되어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 반면에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2.5배나 많은 미국의 평균 주택가격은 우리보다 훨씬 싼 7만5,000달러(8,500만원 정도, 2010년 기준 미국연방준비제도 통계)이다. 그러니 우리의 집값은 아직도 비싸고 한참 더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도 몇 천원하는 식품 물가에는 농업재해대책상황실을 24시간 연다는 정부가 집값은 여전히 부채질하는 기현상을 보인다. 7월에 총부채 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여 집을 사기 위해서라면 은행에서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길을 터놓더니 그래도 집값이 오르지 않자 이번에는 '하우스푸어'를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그 중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하우스푸어'들의 주택을 사들여 임대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새누리당이 제안해서 당정협의를 거치겠다는 것인데 공적 펀드를 조성해 '하우스푸어' 집을 사들인 뒤 본인에게 월세 또는 전세로 임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원래의 소유자가 여력을 갖추게 되면 집을 우선적으로 살 권리도 부여한다고 한다.
안 자체는 참신하다. 그러나 이것은 채권회수에 묘책을 발휘해야 할 민간은행이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는 있어도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니다.
'하우스푸어'란 엄밀히 말하면 빈곤계층 그 자체는 아니다. 여력 이상의 주택을 사려고 은행에서 대출 받았으나 집이 팔리지 않아 대출금 반환에 고통을 겪는 이들이므로 사정은 딱하지만 그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할 경제주체이다. 집값이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공적 자금으로 '하우스푸어'대책을 세우는 것은 '하우스푸어'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국민 전체가 떠맡아준다는 뜻이다. '하우스'조차 갖지 못한 진짜 '푸어'들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정책이다.
집값은 더 떨어져야 한다. 이 명제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주택정책은 있는 자를 위한 선심정책일 뿐이다.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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