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공천헌금 의혹 사건은 라디오21 전 대표 양경숙(51ㆍ구속)씨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의 친분을 과장해 벌인 공천 사기 사건으로 일단락되는 것일까. 박 원내대표를 정조준하는 듯했던 대검 중수부가 시간이 지날수록 박 원내대표의 연루 여부에 대해 한 발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사 초기에만 해도 검찰은 양씨가 받은 공천 대가 투자금 40억여원의 종착지를 박 원내대표로 의심했다. 양씨가 공천을 약속하며 박 원내대표를 직접 언급했다는 서울 강서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이모(56ㆍ구속)씨 등 공천 희망자 3명의 진술, 양씨와 이씨 등이 공천 전에 박 원내대표와 두 차례 만나 식사를 한 점, 이씨 등이 박 원내대표로부터 받았다는 공천 관련 문자메지시 등 나름의 정황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사팀 내에서는 기류 변화가 뚜렷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박 원내대표 측이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워낙 강하게 반박하고 있는 것은 물론, 수사팀 내에서조차 "사실상 박 원내대표의 혐의를 입증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이씨의 휴대폰에서 발견된 박 원내대표 명의의 '박지원이 밀겠습니다. 12번, 14번 확정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2월9일 수신 문자메시지가 사실상 조작됐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문자메시지는 검찰이 이번 사건에 박 원내대표가 깊숙이 개입됐다고 본 유력한 증거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 측이 이 문자메시지가 수신된 시간에 광주에서 김포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해 있었다며 항공사의 탑승사실 조회서를 제시하면서 검찰은 맥이 풀렸다.
검찰은 공천 발표 전날인 지난 3월19일 박 원내대표가 공천 희망자들과 주고 받았다는 문자메시지도 박 원내대표의 이번 사건 개입 여부를 뒷받침할 증거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당시 이씨 등은 '좋은 소식 바랍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박 원내대표는 '좋은 소식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답신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3월19일 메시지는 이씨 등이 이미 1차 공천 서류심사에서 모두 탈락한 16일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사건과의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오히려 "(공천 탈락) 위로 차원에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박 원내대표 측 해명에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30일 브리핑에서 "(이씨 등은 양씨가 정계 사람들을 잘 알고 활동해왔기 때문에) 박 원내대표에게 돈을 주지 않아도 공천을 받게 해 줄 수 있을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로 언급한 것도 이런 기류 변화를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양씨의 단순 투자사기로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검찰 말대로 양씨가 민주당 인사들과 친분이 상당했다면, 공천헌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사건의 큰 골격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특히 양씨가 박 원내대표 외에도 야권의 주요 인사들과 업무상 또는 사적으로 인연을 맺어온 만큼 계좌추적 등을 통해 돈의 흐름이 밝혀질 경우 의외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