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만희-강영걸 콤비'의 귀환… 대학로 소극장 연극의 부활 꿈꾸다
대학로. 서울 종로구 종로5가 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1.55㎞의 길이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내려 남쪽으로 걷다 보면 '대학로 기점'이라고 쓰인 작은 표지석이 나온다. 이곳에 이르려면 개그 무대 호객꾼, 타로점을 쳐준다는 점집, 재잘대는 스마트폰족 등이 지나는 사람을 붙잡는다. 이 별난 생태계에서 문예회관, 흥사단, 학림다방, 샘터파랑새극장 등 몇몇 곳 정도가 대학로의 기억을 재생해 낼 뿐이다.
바로 이 표지석 뒤엔 대학로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1989년 문을 연 이래 '돈 내지 맙시다', '늙은 창녀의 노래', '발발이의 축제' 등 동시대를 발 빠르게 호흡한 문제작을 생산해 온 이 극장에서는 지금 특별한 작품이 무대에 올라 있다. 공전의 히트를 쳤던 연극 '불 좀 꺼주세요'(이하 '불 꺼')가 1992년 초연한 지 20년 만에 다시 관객들을 맞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앙코르 공연이 있었지만 이번 공연은 더 특별하다. 연출가 강영걸(70)씨의 칠순을 기념, 이만희-강영걸 콤비의 작품들로만 구성된 연극만을 올리는 '이만희-강영걸 연극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9월 9일을 폐막일로 잡고 지난 7월 12일부터 공연중인 이 작품이 보유한 타이틀은 화려하다. 우리 연극사상 최장기(3년 6개월) 공연이자 최다 공연(1,157회), 관람 관객 연인원 20만명이라는 전무후무의 기록, 20만명x1만원=20억원 입장료 수익, 서울 정도 600년 기념 타임 캡슐이 소장된 연극 두 편중 하나, 2000년에 다시 보고 싶은 연극 1위 등이다. 이밖에도 불륜을 소재로 여배우 신체노출 등에 따른 외설시비까지 하나같이 화제의 연속이었다.
이 작품은 1991년 초 극작가 이만희(58)씨가 이도경(59) 최정우(57) 등 배우들과 의기투합해 "뭔가 새로운 걸 해보자"며 시작됐다. 외설 연극을 연상시키는 '불 꺼'는 과거에 사랑했다가 따로 결혼한 남녀가 불륜을 저지른다는 내용이다. 별로 특별하다고 할 수도 없는 연극이 성공한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본래의 몸과 분신이 나란히 등장해 겉 다르고 속 다른 마음을 대변하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신선한 형식이 눈길을 끌었다. 1인 다역의 배우들은 바쁘게 변신하며 속도감을 보여줬고, 군더더기 없는 대사가 돋보였다. 또한 불륜이라는 소재를 '틀에 박힌 인생의 분갈이'라는 주제로 승화시켰다는 점과 여배우의 상반신 노출이라는 외설 논란이 있었지만 예술성을 잃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평가를 받았다. 이만희 씨는 개막 전, 작품 내용이 우리 사회의 도덕에 비추어 매도되면서 엉뚱한 논란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상당히 고민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대원외고 교사였던 이 씨는 당시 그만두고 전업 극작가로 길을 걸었다.
연극이 배우의 예술이라는 통념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앙상블의 예술이었다. 무대는 정재진 이도경 최정우 이동희 등 초창기 4명의 콤비로 국내외를 돌며 무대에 올랐다.
1인 8역으로 무대를 뛰어다니며, 쉴 새 없이 옷을 갈아 입어야 했던 이도경 이랑소극장 대표는 "부산에서는 타지방 극단 연극으로는 이례적으로 한 달이나 공연했고 소문을 들은 교포의 초청으로 미국 가서 두 번 공연했다" 고 기억한다.
그에게 이 연극은 쉴 새 없이 옷 갈아 입어야 했던 무대로 각인돼 있다. 연기에 한창 물이 올라 있었던 그에게 이 작품은 다역 전문 배우라는 별명을 하나 얹어 주었다. 나중 1인 24역까지 맡는 계기를 만들어, 여러 사람을 연기하며 쉴새 없이 웃기는 배우라는 인상을 깊게 새겨준 고마운 작품이다. 연극의 막이 내리자마자 방송국에서는 TV드라마 출연 요청이 줄 이었다. 특히 건달패 같이 보이는 그는 신사처럼 보이는 최정우씨와 찰떡 궁합의 명콤비로 소문 나며 무대와 매체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 섭외를 받게 됐다.
특히 이씨는 대학로에 이랑시어터를 짓고 그 후 '용띠 위에 개띠'를 무대에 올려 대박이 났던 것이 모두 '불 꺼'가 안겨준 행운이라 믿는다. 대관료에 쪼들리고 영화ㆍTV에 밀리는 요즘처럼 대학로땅에서 연극하기 힘들어진 때는 없다 생각하지만. 앞서의 4명을 廚沌?민지승 이동시 강지은 등 이 연극으로 인연이 맺어진 배우들은 아직 종종 만나 연극으로 빛났던 그 시절을 추억한다. 초연 당시 강씨 밑에서 조연출로 작업했던 김태수 극단 완자무늬 대표는 "'불 꺼'는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거머쥔 한국 연극사의 대표작"이라고 평했다.
'불 꺼'는 '작가 이만희-연출가 강영걸 연극 시리즈'의 효시다. 채윤일 이현화 방태수 윤조병 등 우리 연극계의 연출가와 극작가 계보에서 강영걸 이만희 버디는 진정한 한국적 연극 메소드를 실현했고, 대학로극장은 그들의 축적물들을 쌓아 왔다. 극장과 극단이 긴밀히 연결된 무대는 연극 공동체의 꿈이다. 강씨는 "극장과 극단이 같이 가지 않으면 결국 돈벌이일 뿐"이라고까지 한다.
그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강영걸씨는 "모두 사람의 이야기로 귀결 짓는 이만희 스타일의 휴머니즘이 좋아 그와 계속 작업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에 대한 희망과 긍정으로 귀결되는 무대가 그는 좋다. 한편 이씨는 자신의 작품 15개 중 7개를 강씨와 초연했다.
2000년과 2004년에도 비록 장소는 다르지만 무대에 올랐던 '불 꺼'는 이번에도 전체적인 구성이나 내용의 변화는 없다. 사실 이 작품은 큰 이야기를 하는 무대도, 뇌리에 오래 남는, 이른바 걸작이 아닐 수도 있다. 소소한 불륜이 있고 일상적인 풍경들이 그것들을 받쳐준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한편의 무대로 엮어내는 연극적 재미라는 '기본'을 일깨워 줬다는 사실이다. 일탈의 계기도 필연적이지 않고, 더욱이 지금의 시점으로 보자면 철 지난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불륜이라는 소재 자체가 갖는 흡인력이 컸다.
젊은 시절, 순수한 사랑을 하던 두 남녀. 남자는 장인의 도움으로 국회의원이 돼 승승장구한다. 여자는 그를 잊으려 결혼을 했다. 정치판에 떠밀려 깊은 허위에 빠져 더 큰 출세를 꿈꾸던 그는 본래의 자기를 찾기 위해 정계를 뜬다. 그가 찾아 간 곳은 옛 여인. 그녀의 삶도 아귀가 맞지 않다. 옛 남자에 버림 받은 분풀이로 그의 친구와 결혼한 그녀는 사실 옛 남자를 마음 속에서 떨쳐내지 못한다.
남자는 여인을 찾아온다. 그리고 마음에도 없던 결혼을 해야 했던 그녀의 사연을 접한다. 그녀의 남편은 몰래 외도중이었다. 무대에서 그 외도 사실은 극적 아이러니의 형태로 객석에 제시된다. 남녀가 대화하고 있는 그 순간, 무대 뒷켠의 침대에서 반라의 커플이 등장해 사랑의 행위를 펼치는 것이다. 그 수위가 지난 시절의 이른바 뒷골목 연극만큼은 아니지만,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소리 없이 전개되는 장면은 농염하기까지 하다. 이 연극에서 제목에 내포된 은밀한 상상력과 직접 관계된 대목은 사실 그것뿐이다.
20년 전 '불 꺼'에서 이도경씨의 푼수 남자 다역 연기가 돋보였다면 이번에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뭣보다 인상적이다. 리얼리즘 기법과 서사극적 수법이 절묘하게 병치되면서 객석은 극히 통속적으로 될 법한 무대에서 잘 훈련된 연극 배우들만이 줄 수 있는 긴장감과 힘을 느끼게 된다. 등ㆍ퇴장 공간이 다양한 극장 공간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강영걸씨의 연출력 덕이다.
강씨는 이번 무대에서 그 같은 점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그것은 이 극장이 갖는 공간적 특성을 더욱 강조하고 싶어서다. "객석과는 정면에서만 마주치게 하는 서양식 무대(프로시니엄)가 아니죠. 어디서든 등ㆍ퇴장이 가능한 무대 공간은 이 극장의 큰 자랑이에요." 그 말은 이른바 외설 연극, 개그 연극이 젊은이들의 연극적 상상력을 앗아간다는 그의 비판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정면으로만 등ㆍ퇴장이 이뤄지는 그런 데서 연극적 상상력이 발붙일 틈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번 공연이 막 시작되던 시점, 강씨에게는 기적 같은 일까지 벌어졌다. 2005년 식도암이 발견됐던 그는 한 달 전에 병원서 흉곽, 소화기, 순환기 등 사진을 있는 대로 찍어 보더니 식도암 완치판정을 받았다. 3번의 수술과 5차례 항암 치료를 마친 후 비로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주앉았다. "암에 질 수 없어, 연극을 그만 둘 수 없어 그 좋아하던 술을 모질게 끊고 지냈다"는 그는 그 소식을 듣고 막걸리 딱 한잔을 했다고 한다. 작업의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숫제 생이빨을 뽑아 버리기도 했던 그였다.
"옛적에는 이른바 상업 극단까지 부조리극, 실험극을 했는데 이제는 (그것들을) 학교에서 조차 가르치지 않는 때지요." 이 극장에서 배우는 관객의 시선에 의해 전방위적으로 노출된다. 쇼처럼 변해버린 연극 무대와는 달리 공간부터가 연극적이라는 사실에 원로 연출가는 지극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는 과거처럼 공연장이 특정 극단과 긴밀히 연계돼 있어, 공연이 없을 때는 워크숍 등으로 자신만의 개성적 어법을 계발해 낼 수 있는 극장을 소망하고 있다.
"옷 벗는 연극, 개그 연극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우리말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없다는 점이라 한다. 독특한 관점의 기저에는 서양식 연극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무대를 찾아 헤매던 젊은 시절, 그를 매료시켰던 예술 양식인 마당극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이 있다.
한 작품을, 한 극장에서 잇달아 공연하면서 이룩한 '불 꺼'의 기록은 기획자의 입김이 최대의 관건으로 자리잡은 현재의 연극 생산 시스템 하에서는 이제 꿈조차 꿀 수 없다. '불 꺼'는 그의 낯익은 꿈이다.
연극비평가 구히서씨는 "우리 말의 장단과 어울림을 깊이 있고 신명 나게 다룰 줄 아는 언어의 마술사 이만희, 무대 현장에서 세찬 생명력으로 살려내는 강영걸"이라며 이 버디의 힘을 요약한다. "연극적 재미가 뭔지를 가르쳐 준 무대였지요. 스타가 아니라 묵묵히 연극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짜내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연일 줄을 섰죠." 강영걸의 장인 정신, 오래 다듬어진 일꾼들의 기술과 정신의 결합체였다는 것.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제부터다.
"영화의 리메이크 작업마냥 추억에 호소하는 작품이 아니라 그 시대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라"고 구씨는 권유했다. "향후 이-강 시리즈에 대한 기대가 참으로 크다. 철 지난 이야기를 반복하는 듯한 무대가 아니라 현재의 관객에 밀착하는 작품들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그가 강조하는 이유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 "대학로 문화지구 지정 후 건물세 올라 경영난…연극하다 남은 게 하나 없죠"
"(대학로가) 문화지구로 지정되고, 우리는 다 망했다. 집세만 올랐다." 정재진(59) 대학로극장 전 대표의 입에서 나온 장탄식이다. 정 전 대표는 '불 좀 꺼주세요'에 직접 출연하여 1인다역을 소화했고, 대학로극장을 직접 운영했던 주인공. 하지만 그는 연극을 하다 지금은 남은 게 하나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한 작품 하면 2,000만~3,000만 원은 깨져요. 방송과 대학강의로 버티는 거죠." 1996년까지 이 극장을 운영하다가 부인에게 넘긴 정 씨의 말에는 턱없이 오른 집세에 자기 땅에서 쫓겨나야 하는 연극인들의 불만이 배어 있다. 현재 극장 운영의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연극인들의 딱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연극 공연 소극장들이 추풍낙엽처럼 날아가는 현실이 안쓰럽기만 하다. 연극만을 생각하는, 진정한 배우들을 위한 극장이란 기치 아래 배우 김갑수씨가 운영해 오고 있는 소극장 배우세상마저 경영난에 치였다.
"그나마 명맥을 지키는 삼일로 창고극장의 미래도 불투명 하다 잖아요?" 그 같은 상황을 가속화한 것이 문화지구로 지정되고 나서라는 지적이다. 그는 "미처 받지 못한 대관료만 꼬박꼬박 챙겼어도 아파트 한 채 값은 될 것"이라면서도 "같은 연극인끼리…"라고 말끝을 흐린다. 빤히 아는 처지에 야박하게 굴 수 없다는 것.
그는 우리 연극인들의 이동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카페떼아트르, 창고극장이 있던 시절, 명동은 연극인들의 본향이나 진배없었다. 다음 신촌으로 갔다, 대학로로 왔는데 그마저도 주인들은 핍박 받고 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극단과 극장이 공존하는 때였다. 이제는 기획자 혹은 제작자의 시대. 예술이 상품이라는 꼭지로 거듭 나야 존재할 수 있는 시대, 대학로극장의 대표도 새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일단 여기를 떠, 새 길을 찾아 보기로 했다. 본토 사람들이 두 손 드는 대학로의 현 추세를 거스른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문화기획사인 주식회사 들꽃나라의 제안으로 오는 12월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됐던 평사리로 내려가 극장을 짓고, '관객모독' 등 그간 자신이 해 온 화제의 연극들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릴 생각이다.
극장의 안팎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말했다. "어차피 세입자인데, 나는 극장을 지켜낼 자신이 없다. 가장 큰 자산이라면 극장의 이름이다." 대학로의 기점을 표시하는 조그마한 조형물 바로 뒤에 위치하는 대학로극장. 위기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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