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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박근혜의 100% 대한민국, 그리고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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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박근혜의 100% 대한민국, 그리고 전태일

입력
2012.08.2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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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후보 수락 연설문에 "100% 대한민국"이란 말을 등장시켰다.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 했다. 후보 수락 이후의 '광폭행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참배·봉하마을 방문·등록금 토론회 참여·전태일 재단 방문 미수 등이 이 의도를 실행하기 위한 움직임일 것이다.

그러나 '전태일과의 만남'만큼은 쉽지 않았다. 쌍용차 노동자부터 만나고 오라는 면박을 들었다. 그래서 대한문 분향소로 가겠다 했다. 결국 그마저도 취소하고 '전태일의 다리'에 헌화하려는 걸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 등에 의해 가로막혔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몇주 째 면담을 요청하며 새누리당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작위적 방문 시도에 대한 항의는 타당하다. 노동자 권리를 개선하는 법안이나 먼저 신경쓰라는 비판도 합당했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신문은 그 짧은 만남의 순간을 다른 사진으로 담았다. 보수 신문 1면에선 움직임이 큰 김정우가 박근혜를 가로 막고 있고, 진보 신문 1면에선 가로막은 김정우가 경호원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 나갈 듯하다.

'100% 대한민국'을 선언한 이상 모든 세력을 만나기는 해야 할 것이고 거절을 당하면 당하는 대로 보수진영에서 활용할 것이다. 그러나 '전태일과의 만남'은 김대중이나 장준하와의 '화해'와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이게 다른 이유는 김대중이나 장준하는 명망가 정치인이며 전태일은 노동자였다는 식의 단순구분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문제는 박근혜가 '아버지'를 계승하는 방식이 아버지의 시대를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내면의 선의를 추론하는 것에 머물러 있다는 데에 있다. "아버지가 꿈꾸는 것은 복지국가였다"라거나 "아버지가 계속 살아계셨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셨을 거라고 믿는다"와 같은 발언들이 보여주는 바가 그렇다. 장준하나 김대중에게는 그런 정도의 접근으로도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 '아버지'가 가두고, 때리고, 죽였거나 죽이려 했단 의심을 산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전태일에겐 이런 접근이 불가능하다. 전태일과의 만남의 이유를 "아버지가 당신을 괴롭힌 걸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악의는 아니었다" 정도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전태일이란 상징을 설명하려면 박정희의 내면의 선의가 아니라 적어도 그가 그 시대상황에서 했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전태일은 박정희가 손수 죽였거나 죽이려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박근혜는 무엇에 불화했는지 뭘 화해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전태일을 찾아놓고 문전박대 당했다 선전하는 셈이다.

박근혜는 5ㆍ16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옹호함은 물론 유신까지도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며 평가를 유보한다. 판단에 기준이 없다. 보수를 대표하는 신문은 사설과 칼럼에서 일관되게 5ㆍ16의 역할은 긍정하되 유신은 비판해야 한다 주장한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현재의 국민정서나 결과론적 시각이다. 그러나 유신은 '박정희의 몰락을 가져온 원인'이라기 보다 '박정희가 민심을 잃어버리면서 나온 결과'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1970년 겨울 전태일의 분신과 '전태일 정신 구현'을 적극 제기한 71년 대선의 김대중이 있다. 즉 철저하게 보수적 시선으로 보더라도, 60년대에 어느 정도 시대정신을 대변했던 박정희가 그의 지향에 염증을 느낀 민심에 반발하며 70년대에 '민의를 억누르는 평범한 독재자'가 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인정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박정희의 공과를, 민주주의를 결정적으로 폄훼하지 않는 수준에서 절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세력은 70년대와 80년대에 얻어낸 과실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고작 이 정도의 절충안도 택한 적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장준하'나 '김대중'과 같은 박정희에 반대했던 상대편의 상징에만 접근할 수 있을 뿐 '전태일'에는 결코 닿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윤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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