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 한국 영화로는 7년 만에 초청받은 작품이 내 영화란 게 영광스럽습니다. 수상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다면 감사하겠어요.”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은 출국을 앞두고 29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한국의 많은 감독들이 매년 베니스영화제를 통해 세계에 소개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 영화의 베니스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초청은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7년만이다. 베니스영화제는 유난히 김 감독과 인연이 깊다. 2000년과 2001년 ‘섬’, ‘수취인불명’으로 2년 연속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된 뒤 2004년 ‘빈집’으로 은사자상(감독상), 젊은비평가상, 국제비평가협회상, 세계가톨릭협회상 등 4개 부문 상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동시대 감독들의 시대를 보는 시선을 배우고 공유할 수 있는 기회란 생각으로 큰 욕심 없이 영화제에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의 열여덟 번째 작품인 ‘피에타’는 불신과 증오로 파멸을 향해 치닫는 우리의 참혹한 자화상을 그렸다. 잔인한 사채 회수업자로 살고 있는 ‘강도’(이정진)와 그를 찾아온 엄마라는 ‘여자’(조민수)의 관계를 통해 돈에 매몰된 극단적인 현실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고 사회 구성원들이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한다”며 “자본이 몰아세운 지나친 수직경쟁의 폐해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이번 작품을 내놓기까지 3년이 넘는 공백이 있었다. 그는 “칩거의 시간은 나 자신을 단련시키는 기간이었다”며 “과거의 사건, 인물들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게 됐고, 내 안의 작은 욕망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고마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 공백을 통해 ‘과거는 돌아보지 말고, 미래는 기다리지 말고, 현재는 놓치지 말자’는 화두를 얻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모든 것이 결핍된 잔인한 강도역을 소화하며 김기덕의 새로운 ‘나쁜 남자’가 된 이정진은 “김 감독 덕분에 베니스의 레드 카펫을 밟게 돼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스터리에 싸인 조민수는 동물적인 연기 감각으로 김 감독에게서 ‘흑발의 마리아’란 찬사를 얻었다. 조민수 역시 “촬영하면서 칸, 베를린, 베니스 세계 3대 영화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감독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29일 개막해 다음달 8일까지 이어지는 베니스영화제에는 모두 60여 편의 작품이 초청됐으며 이중 공식 경쟁부문 작품은 18편이다. ‘피에타’와 함께 황금사자상을 놓고 경쟁할 영화는 미국 감독인 테렌스 맬릭의 ‘투 더 원더’, 브라이언 드 팔마의 ‘패션’,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더 마스터’와 일본 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아웃 레이지 비욘드’ 등이 꼽히고 있다. ‘피에타’는 다음달 6일 국내 개봉한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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