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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호들갑은 나라가, 대책은 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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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호들갑은 나라가, 대책은 개인이

입력
2012.08.2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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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불던 어제 나는 집에 있었다. 가급적 돌아다니지 말라는 나라의 말을 잘 따랐다. 그런데 딩동. 낮 12시에 벨이 울리더니 "택배요!" 하는 소리에 문을 여니 택배 노동자가 흠뻑 젖은 옷차림에 책 한 권 달랑 든 소포를 들고 있었다. 사인을 하고 문을 닫으면서 처음엔 이 태풍을 뚫고 배달해 주신 것에 고마웠다. 저런 노동자분들의 수고 덕분에 글도 쓸 수 있다. 세상에 협업이나 공동창작이 아닌 노동은 없다. 그런데 잠시 후 이런 날에도 택배가 도착하는 이 사회는 좋은 사회인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서둘러 직장으로 떠난 친구가 생각났다. 평소보다 더 서둘렀고 직장 동료들에게도 전화를 해서 일찍 오라고 단도리를 했다. 태풍이 오거나 물난리가 나서 교통이 두절되기 전에 빨리 직장에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가 집을 나서면서 한 말은 "오늘 돌아올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였다.

우리가 이러고 살고 있다. 초대형 태풍이 불어 길거리에서 간판에 맞아 죽을지 몰라도 일단 직장은 가야 한다. 하루쯤 직장을 쉰다고 직장이 망할 리도 없고 나라 경제가 절단날 일도 없지만 죽어도 살아도 일단 직장을 가야 한다. 인터넷 서점에 주문한 책이 하루쯤 늦게 온다고 쓰던 '대작'을 못 쓰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비밀이 하루 늦게 드러나는 것도 아닌데도 택배 노동자는 '하루 배송'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강풍과 폭우를 뚫고 달리고 달려야 한다. 이 와중에 방송 기자들은 나라에서는 절대 가지 말라는 폭풍우 몰아치는 부두로 가서 비바람을 흠뻑 맞으며 바람에 비틀거리면서 이 바람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럼 태풍 한 번 온다고 직장이며 뭐고 다 나가지 말아야 하나? 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태풍도 아니고 나라와 방송이 이토록 난리를 칠 만큼 위험한 태풍이었는데! 마와 매미의 악몽을 떠올린다면 이 날 하루 정도는 사람들이 더불어 있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족이건 친구건 사랑하는 이와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은 그 사랑하는 이와 함께, 혹은 자기 혼자서 고독을 느끼고 싶은 사람은 자기 자신의 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모처럼만에 시간을 정지하고서 말이다.

이런 나보고 별 것 아닌데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라 호들갑은 나라와 방송이 떨었고, 이 '순진한' 서생은 거기에 충실하게 이 태풍 부는 날이 어떻게 하면 '인문학적'일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뿐이지 않은가? 나는 태풍 부는 날 고요할 수 있는 삶, 그보다 더 '인문학적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이 고요한 시간의 가치는 인문학 책 수십 권을 읽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시간이 멈추는 순간에 먹고사는 것조차 멈춰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태풍 불면 위험을 무릅쓰고 나가야하는 농어촌과는 상관없는 도시생활자의 감상이라는 것도 잘 안다. 도시라고 하더라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월급이 아니라 시급으로, '껀'당 돈을 받는 노동자 아닌 노동자들에게 하루 쉬라는 것은 배곯으라는 말과 똑같다.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업소가 문을 열고 배달 일이 생기기를 바란다는 것을 말이다. 정규직이라고 다르지 않다. 맞벌이 부부들은 학교'만' 쉬는 바람에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몰라 비상이었다. 그래서 재난의 때에 우리는 인문학적인 고요함은커녕 주변 사람 걱정에 마음만 졸이고 살아야 한다. 혹시라도 집에 아이 혼자 두고 출근한 부모가 있었다면 하루 종일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 것인가. 트위터에서 한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택배 노동자의 가족들은 또 얼마나 그의 퇴근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렸을 것인가.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새벽에 직장에 간 친구가 오밤중에 무사히 돌아온 것을 기뻐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라면, 이게 사는 건가.

엄기호 교육공동체 벗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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