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하순 이후 한 달 넘게 이어져 온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한 안정세가 중대 기로에 놓였다. 이달 말(31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연설을 시작으로 다음달 중순까지 세계경제의 향방을 좌우할 대형 이벤트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역시 짧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한달 여의 글로벌 증시 상승세를 '바캉스 랠리'라고 부른다. 상반기 내내 악재를 쏟아내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바캉스 시즌을 맞아 잠시 주춤해진 사이, 버냉키와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이 "(위기를)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부추긴 결과 전형적인 유동성 장세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 발언이 '사실'인지를 확인해야 할 시점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 자칫 기대와 다른 결정이 나올 경우 글로벌 투자심리는 언제든 곤두박질 칠 수 있다는 얘기다.
29일 금융계에 따르면 시장의 관심은 우선 31일 버냉키의 입에 쏠리고 있다.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3차 양적완화ㆍQE3) 조치를 기대하는 분위기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미국의 8월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좋았던 데다 금리도 낮고 신용경색도 없는 상황이어서 추가로 경기부양에 나설 명분이 약하다는 평가가 많다.
김종만 국제금융센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선을 앞둔 미 정치권의 QE3에 대한 입장이 달라 연임을 꿈꾸는 버냉키로서도 쉽게 결정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때문에 다음달 12~13일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도 QE3에 대한 기대감을 적당히 유지하는 수준을 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반면 유럽은 사정이 좀 더 다급하다. 최대 관심사는 재정위기 확산의 뇌관으로 여겨지는 스페인의 국채를 ECB가 직접 사 줄 것이냐 여부. 이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정부의 적자를 메우는 비정상적인 조치인데, 독일 등 재정이 튼튼한 회원국의 반대가 강하지만 현재로선 별다른 대안도 없는 상태다.
빠르면 6일 ECB 정례회의에서 드라기 총재가 국채 매입을 선언할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적어도 12일 독일 헌법재판소의 유럽안정화기구(ESM) 위헌 판결 전까지는 최종 결정을 미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독일 헌재는 유럽위기 해결을 위해 설립된 ESM이 자국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헌법을 침해했는지 결정하는데, 위헌 판결이 나오면 사실상 유로존과 결별 수순을 밟게 돼 "독일이 그만한 용기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6일 ECB 회의에서 대략적인 시행 방향을 제시한 뒤, 12일 독일 헌재 판결 이후 구체적인 매입 규모와 시기를 발표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유럽팀장은 "다만 시장이 그때그때의 발표에 어떻게 반응할 지, ECB의 국채 매입 속도가 얼마 안 남은 스페인의 재정여력에 실제 도움을 줄 지 등에 따라 시장은 계속 요동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스가 요구 중인 긴축조치 이행시한 연장 요구에 대해서도 14일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모종의 타협안이 나올 수 있다.
이 달 들어 국내 증시에 쏟아져 들어온 사상 두 번째 규모의 외국인 투자금(5조7,215억원)도 이런 이벤트 결과에 따라 방향을 다시 정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서는 "9월 증시는 횡보 또는 조정 가능성이 높다"(임수균 삼성증권 연구원), "2,050선까지 상승랠리를 탈 것"(박중섭 대신증권 연구원)이라는 등 다양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