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29일은 경술국치가 있었던 날이다. 달력, 수첩 어느 곳에도 특별한 날로 표시 되어 있지 않다. 이날을 제대로 아는 이가 이젠 드물다. 우리의 주권을 일제에 빼앗기면서 대한제국이 역사에서 사라진 날이다.
현재 국제 정세는 어수선했던 구한말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시아 강대국들은 이웃하고 있는 나라들과 도서, 국경문제에 타협점을 ?지 못하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구한말에도 이랬다. 중국은 자국의 힘을 앞세워 역사공정을 통해 슬금슬금 고조선, 고구려유산을 중국풍의 유물로 개창해 변방의 역사로 편입하려 하고 있고, 일본은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8월이면 연례행사처럼 독도망언을 내뱉고,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ICJ) 로 끌어 들여 분쟁지역으로 인식시키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부 학생들 중에는 일본의 731부대를 '독립군'으로 잘못 알고 있으며, 3ㆍ1운동을 '삼쩜일운동' 이라고 읽는 학생도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의 역사교육은 단순한 암기과목으로 전락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조급한 글로벌의식에 사로잡혀 성급한 동북아 협력시대를 외치고 있는 형국이다.
동북아시아가 하나의 울타리가 되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이웃 강대국에 밀리지 않고 진정한 파트너가 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지나온 역사를 확고히 인식해 민족의 주체성을 바로 세우고, 미래의 방향을 바라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안목은 한 순간에 길러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관심과 역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인식이 바탕이 됐을 때 싹튼다. 이를 위한 역사교육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역사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언 하고자 한다.
첫째, 초ㆍ중ㆍ고교 교과내용을 차별화 하고 단순 암기식 교육에서 탈피해야 한다. 초ㆍ중ㆍ고의 역사교과서 형식이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통사적 기술로 내용이 반복되고, 분량이 많아 암기하기 힘들고, 지루한 과목으로 인식된다. 이해 없는 암기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초등학생들에게는 쉽고 재미 있게 접근할 수 있는 일화, 영웅 등의 이야기로 흥미와 관심을 유발시키고, 중ㆍ고등학생들에게는 지속적인 역사기행과 현장체험, 토론식수업, 참여학습 등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 자연스럽게 체화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대학생들에게는 졸업 필수과정으로 한국사 능력시험 급수를 의무적으로 취득하도록 해야 하며, 기업체에서는 입사, 승진시험에 한국사 가점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사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인식 돼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학부과정에 인물학, 독도학 등 전문적이며 심도 있는 학문분야가 신설, 확대 돼야 한다.
셋째, 역사교육를 유연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역사는 안 배워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다는 사고는 진부한 생각이다. 드라마 '대장금', '대조영'을 하나의 상품이라고 할 때, 그 콘텐츠는 바로 역사다.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류의 바람과 함께 우리의 역사를 다양한 문화 마케팅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시대에 시각을 달리하면 대한민국의 유수하고, 올바른 역사를 세계에 알리고 한류문화상품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춘추시대의 구천이 쓸개를 놔 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 치욕을 상기했던 와신상담의 고사는 과거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아픈 과거를 곱씹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만은 치욕의 과거라고 해서 외면한다면 미래는 있을 수 없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시대만 바뀌었을 뿐 같은 무대에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들의 사이가 당시와 비슷하다. 102년 전의 8월 29일에 한반도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치욕적 역사의 망령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더더욱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겐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성찰하며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지혜는 과거를 정확히 알고 있을 때 나온다.
변성섭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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