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연수씨가 일곱 번째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자음과모음 발행)을 냈다. 지난해 계간지 <자음과모음> 에 연재된 소설은 미국 백인가정에 입양된 카밀라가 모국인 한국에서 겪는 여정을 통해 자신의 기원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28일 서울 명동에서 만난 작가는 "24년 전 알려지지 않은 사랑, 사랑의 결실인 아이가 자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자음과모음> 파도가>
생후 6개월의 갓난 아기 때 미국 백인가정으로 입양된 후 작가가 된 카밀라 포트만은 친부모를 찾기 위해 모국인 한국의 진남에 약혼자 유이치와 함께 온다. 카밀라가 가지고 있는 단서는 입양 당시 기록인 낡은 사진과 편지 한 장. 카밀라는 친모가 다녔다는 진남여고를 찾아 사정을 말하지만, 교장 서혜숙은 열녀비를 보여주며 졸업생 중 임신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카밀라는 통역사 서 교수의 도움으로 지역신문에 인터뷰를 하게 되고, 친모의 동창 김미옥에게서 자신의 엄마는 진남여고 학생 정지은이고, 문예지를 만들었던 문학소녀였으며, 자신을 낳고 졸업 전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카밀라는 다시 여고로 찾아가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엄마의 중학생시절 진남조선소파업 도중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목숨을 끊었고, 자신의 한국인 이름이 희재란 사실을 알게 된다. 김씨는 "우연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지난해 한진중공업 파업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소설은 이렇듯 이야기에 이야기를 품은 중층구조이지만, 김씨의 이전 작품에 비해 한결 속도감 있다. 유이치, 서 교수를 비롯해 바다에 빠진 희재의 목숨을 구해준 지훈, 교장 서혜숙과 남편 최성식, 지은의 동창인 미옥, 윤경, 유진 등 다양한 인물들의 기억이 엇갈리며 지은의 사연이 되살아나온다. 김씨는 "(사건의)당사자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설정"이라며 "각자 자기 입장에서 사건을 기억하지만 각 사람들의 모든 힘을 다 합치면 가까스로 (진실한)기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잃고 실어증에 걸린 지은에게 담임 최성식은 애틋한 마음을 갖고, 지은의 말문을 열기 위해 시를 읽어주기 시작한다. 학교에는 지은과 성식 사이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성식은 소문을 무마시키고자 서둘러 서혜숙과 결혼을 감행한다. 그런 중 지은은 아이를 임신하고, 진남조선소파업으로 아버지의 목숨을 잃은 미옥을 비롯해 몇몇 아이들은 지은이 담임선생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성식이 낙태를 설득하러 지은의 집을 찾아오고, 지은의 오라비가 성식을 칼로 찌르며, 아이의 아버지가 지은의 오빠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엄마 지은의 목소리를 통해 각자의 목소리가 통합되고, 엄마가 사랑했던 희재의 반쪽이 작품 말미에 드러난다.
40대 중반의 작가가 17살 여고생(지은)과 25살 작가(희재), 42살 아줌마(김미옥)의 목소리를 능청스럽게 구사하는 것은 흡사 연극의 메소드 기법을 연상시킨다. 김씨는 "30대 초반 여성들의 산문집이나 <페이퍼> <보그걸> 같은 10대들이 보는 패션잡지가 문장을 익히는데 도움이 됐다"며 "어떤 사안에 대해 40대 남자인 내가 진지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한다면 이들은 감각적으로 접근하더라"고 말했다. 감수성 충만한 지은과 유이치의 시는 대학시절 김씨가 쓴 시를 고쳐 수록했다. 보그걸> 페이퍼>
신작은 이전 작품에서 일관되게 강조했던 작가의 주제를 다시 변주한다. 한 사람의 슬픔과 기쁨과 고통과 희열은 말로 전달될 수 없다는 것. 고로 우리의 소통은 완전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나는 너를 이해한다'는 말 따위를 내뱉어선 안 된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언어를 넘어선 어떤 '공백'에 기대어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작가는 "희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로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만나게 된다. 가끔 그 공백을 건너 의미나 마음이 전달되기도 한다. 독자들도 희재처럼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 공백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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