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과거사 인식이 퇴보하고 있다.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락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외국 영토를 넘보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역사 화해를 청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반짝 시도'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우경화 흐름과 맞물려 적반하장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사 반성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진정성과 의지 부족, 이에 편승하는 정치인들의 잇따른 역사왜곡 망언으로 한일 관계는 1965년 수교 이래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955년 자민당 집권 이후 사회당 출신 첫 총리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는 1995년 8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인해 손해와 고통을 준 것에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종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것과 더불어 일본 정치인의 태도 변화로 주목 받았다. 이 같은 양국의 우호적 분위기는 98년 양국의 협력을 다짐하는 '한일 공동 선언'으로 이어져 이후 한류를 비롯해 사회·문화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다시 정권을 잡은 일본 자민당 우파 세력은 고노 담화에 대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도의적 책임에 불과하다"며 한국이 요구하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등 일본의 유력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망언을 일삼으며 한국 국민을 격분시켰다. 일본은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물질적 보상 방안을 제시했지만 국제적인 비난을 피하기 위한 면피성 조치에 불과했다.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면서 한일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하지만 일본 방위성은 한국 정부의 거센 반발에 아랑곳없이 8월 방위백서에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로 규정해 공세를 강화하며 한일 관계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방위백서는 이후 매년 같은 표현을 고수하고 있다. 2006년 8월 일본이 해양조사선을 독도 근해로 파견한다고 밝히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발포명령을 내리며 양국이 격렬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한일 관계에 이상 조짐이 나타날 때마다 개선 노력을 하기는커녕 총리와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며 국민들의 편협한 애국심을 부추기고 있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8일 "일본인은 과거 제국주의 향수에 젖어 심리적으로 한국을 무시하는 자국민 우월주의가 강하다"며 "따라서 정치인들이 선동해 여론을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은 젊은 세대에게도 잘못된 역사를 주입하고 있다. 90년대 말부터 일부 우익단체를 중심으로 불거진 역사 왜곡 움직임은 2006년 교육기본법을 개정해 애국심 교육을 강조하면서 본격화됐다. 일본 정부는 2008년 중학교 학습지도요령을 바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 영유권 주장을 둘러싸고 한국과 입장 차이가 있다'는 지침을 내렸고 이후 초·중·고교의 상당수 역사, 지리 교과서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시하고 있다.
이상훈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근본적 책임을 져야 할 일왕이 존속하는 한 일본인들이 과거사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며 "한일 관계는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부딪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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