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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호주의 역습] <2> 기승 부리는 기술보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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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호주의 역습] <2> 기승 부리는 기술보호주의

입력
2012.08.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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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허' 악용한 소송 남발… 법원은 노골적 '자국 기업 편들기'

지난해 11월 미국 버지니아주 연방법원 배심원들은 우리나라 코오롱인더스트리에 9억1,990만달러, 우리 돈으로 1조원이 넘는 손해배상 평결을 내렸다. 미국을 대표하는 화학회사인 듀퐁이 코오롱을 상대로 퇴사직원을 통해 첨단섬유소재(아라미드) 영업비밀을 빼냈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었다. 코오롱은 심리과정에서 ▦아라미드는 훔친 것이 아니라 30년 가까이 연구해 개발한 기술이고 ▦더구나 듀퐁측의 영업비밀은 이미 유효기간이 만료됐거나 공개된 특허라는 점을 수없이 설명했지만, 배심원들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송이 진행된 버지니아주 연방법원은 듀퐁의 공장이 위치한 곳이다. 배심원들도 대부분 이 곳에서 뽑혔다. 때문에 평결 전부터 법원 주변에선 "결과를 보나마나 지역기업(듀퐁)이 이기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코오롱이 2006년부터 5년간 수출한 아라미드는 겨우 30억원 규모. 하지만 이 평결로 코오롱은 수출액의 무려 300배가 넘는 돈을 물 위기에 처했다.

글로벌 기업간 경쟁이 가열되면서 기술보호주의, 특허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업들은 특허를 무기로 경쟁사를 제압하려 하고, 이를 둘러싼 소송은 자국기업에 유리한 '애국 판결(평결)'로 이어지면서, 혁신제품을 위한 정상적 기술경쟁은 점점 더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기의 특허전쟁'으로 불리는 삼성전자와 애플간 소송에서 미 캘리포니아 연방북부지방법원 배심원들이 일방적으로 애플의 손을 들어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과 삼성전자간 특허소송에 대한 평결이나 듀퐁과 코오롱간 손해배상 평결이나 배심원들이 귀를 막고 팔이 완전히 안으로 굽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본질은 똑같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기업들은 특허공세에서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한국기업들의 글로벌 성장세가 워낙 빠르다 보니,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해외 기업들이 강력한 특허공세를 통해 아예 '싹'을 자르겠다는 나선 것이다. 지식재산보호협회에 따르면 국내기업들이 특허침해로 피소된 건수는 2009년 112건에서 2010년 165건, 작년에는 195건으로 급증하는 추세이고, 이는 우리나라 기업이 제소한 건수(2011년 83건)의 배가 넘는 규모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애플은 스마트폰에서 독주를 예상했지만 삼성전자가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자 특허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특허를 통해 삼성전자의 싹을 꺾어놓겠다는 것이 애플의 애초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고작 30억원어치를 수출한 코오롱에게 듀퐁이 무려 1조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도, 경쟁자가 되기 전에 아예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기술ㆍ특허보호주의가 만연하다 보니, 아예 특허를 대량으로 사들인 뒤 취약한 기업들을 골라 특허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이나 로열티를 받아내는 이른바 '특허괴물'들도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특허소송이며, 특허를 개발하거나 이를 토대로 혁신제품을 만드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미국 특허조사 전문업체인 페이턴트프리덤에 따르면 2007년 519건에 머물렀던 특허괴물들의 글로벌 소송 건수는 지난해 1,211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2,400여건까지 급증할 전망이다. 지난 달엔 미 캘리포니아에서 특허괴물 2곳을 포함한 3개사가 국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11개 기업을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기술이 '개발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이 되고, 특허가 '제품생산의 무기'가 아닌 '소송의 무기'가 되면서, 치명적 타격을 입고 쓰러지는 기업까지 생겨나고 있다. 지난 1월 파산보호신청을 낸 132년 역사의 세계 최대필름업체인 이스트먼 코닥의 몰락도, 광학기기 전문제조사인 폴라로이드와 진행된 15년간의 특허소송에서 패하면서부터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현재 특허시장은 '치킨게임'으로 변질되는 추세다. 기업들로선 공격받지 않기 위해 먼저 공격하고, 이를 위해 자의반타의반으로 특허 매집에 나서고 있다. 특히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등 글로벌 기업들은 수 조원씩 퍼부으면서 공격적으로 특허를 사들이고 있다.

장원준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 IT기반정보팀 팀장은 "국내기업들의 경쟁력이 커질수록 특허 등을 활용한 해외기업들의 견제와 공세는 더 심해질 것"이라며 "제품 기획단계에서부터 특허소송을 염두에 둬야 하고 전문 인력도 양성까지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 '삼성제품 판금 신청' 애플 되레 역풍 될수도

삼성전자 제품이 애플 특허를 침해했다는 배심원 평결에 따라 애플이 즉각 미국법원에 가처분 판매 금지를 신청했다.

27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8종에 대해 법원 확정 판결이 나기 전에 미국 내 판매 금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캘리포니아북부 법원에 제출했다.

해당 제품은 갤럭시S 4G, 갤럭시S2(AT&T), 갤럭시S2(스카이로켓), 갤럭시S2(T-모바일), 갤럭시S2(에픽 4G), 갤럭시S(쇼케이스), 드로이드 차지, 갤럭시 프리베일 등이다. 이들은 지난 2년 간 미국에서 총 906만여 대가 팔려 32억5,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알짜배기'제품들. 특히 갤럭시 프리베일은 삼성 제품 중 최대 판매량(225만5,000대)를 거둔 바 있고 갤럭시S2 역시 최대 히트작으로 꼽힌다. 배심원단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28종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평결했는데, 애플은 삼성에게 가장 타격을 줄 수 있는 최신 제품을 골라 판매금지를 신청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삼성의 주력 제품이자 최신 기종인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2는 제외됐다. 특허소송을 처음 낼 당시에는 이 제품들은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도 삼성이 받을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투자은행 파이프 재프리의 애플 담당 애널리스트 진 문스터는 "최신 기종인 갤럭시S3 등이 포함되지 않아 삼성이 미국에서 모바일기기를 판매하는데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판매금지가 되더라도 애플이 당장 큰 덕을 보지는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 빌 쇼프는 "판매금지와 관련된 제품들이 미국시장에 미칠 영향은 5% 정도에 불과하고 배상금은 애플이 보유한 현금 1,000달러의 1% 수준"이라며 "단기적으로 애플(의 실적)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애플이 오히려 '역풍'을 걱정해야 할 것이란 조언도 있다. 증권사 BMO 의 케이스 바흐만 애널리스트는 "한국에서 다른 판결이 나온 것처럼 애플이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의 소송에서 승소하리란 보장은 없다"며 "애플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처럼 비쳐지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애플이 유리한 위치를 점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바클레이스의 벤 리츠스 연구원은 "안드로이드에 대한 애플의 중요한 승리로 기록될 것"이라며 "경쟁자들은 이제 애플과 경쟁하는 방법과 관련해 배 이상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애플의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심리는 내달 20일부터 진행된다. 캘리포니아 북부법원의 루시 고 판사는 이와 별개로 1개월 이내에 배심원 평결을 기초로 확정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 삼성 vs 애플 최대 승자는 변호사들?

삼성전자와 애플간 세기의 특허소송을 담당한 로펌들이 최고 1억달러의 '대박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싸움의 최대승자는 변호사란 말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법학교수들과 특허 변호사들을 인용해, 삼성과 애플을 대리했던 법무법인들은 수임 및 승소계약에 따라 각각 최저 500만달러(56억원) 최고 1억달러(1,135억원)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1억 달러의 수임료는 이 재판 배심원들이 지난 25일 삼성전자에 평결한 배상액의 10%에 가까운 금액이다.

법원 서류를 보면 애플측 변호를 맡은 모리스앤드포에스터 소속 파트너 변호사 등의 시간당 수임료 중간값은 582달러(66만원)이고 삼성 변호단인 퀸이매뉴엘 파트너들의 평균 몸값은 821달러(93만원) 수준이다. 유명 법무법인인 휘네갠의 특허법 전문가인 도널드 더너는 "삼성과 애플이 최고의 변호사들을 고용한 만큼 그들의 능력에 합당한 수입료를 지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잇따르는 특허소송이 미국 내 특허전문 변호사들의 몸값을 지나치게 높여놨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이와 관련 "애플의 잇따른 특허소송 때문에 변호사 수임료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며 "애플이 고용한 변호사들의 몸값이 시간당 1,200달러(136만원)에 달했다"고 전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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