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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논쟁] 묻지마 범죄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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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논쟁] 묻지마 범죄 해법

입력
2012.08.2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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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시민들은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최근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은 '묻지마 범죄'의 결정판이다. 이후 비슷한 범죄가 잇따르면서 정부 당국도 비상이 걸렸다. 급기야 검찰이 28일 전국 강력부장검사 회의를 열어 '묻지마 범죄' 대응책을 내놓았다. 관련 피의자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강화된 구형기준을 적용해 일반범죄보다 중형을 구형하겠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이는 급조된 성격이 짙어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묻지마 범죄'가 사회에서 소외되고 낙오된 사람들의 자포자기형 분노 범죄라는 측면에서 발생 원인에 대한 분석이 먼저 이뤄진 뒤 정치(精緻)한 대책을 만들라는 요구다. 피의자 한 사람만의 문제로 인식해선 곤란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묻지마 범죄'의 주된 동기는 사회에 대한 누적된 분노와 증오"라며 "'은둔형 외톨이' 등이 양산되지 않게 사회적 햇볕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묻지마 범죄'도 문화적 전염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문화적 전염의 통로를 차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 "문화적 전염병 속성…급속 확산 위험…엄한 단죄·사회안전망 확충 병행해야"

'묻지마 범죄'는 공동생활에 필요한 근본적 믿음, 곧 '타인들이 이유도 없이 나를 해치진 않겠지'라는 신뢰를 파괴한다. 그 폐해는 말할 나위 없이 크다. 그래서 원인 진단과 해결 방안에 대해 많은 제언과 주장들이 제출됐다.

그것을 대략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범죄를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범죄자에 주목하는 이런 유의 진단은 처벌을 선호하며, '위험 집단'들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사회적 조건을 중시하는 관점이다. 범죄자들의 사회적 환경에 주목해 그것을 개선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자는 것이다. 사회 안전망 확충이 예가 된다.

첫 번째 관점의 장점은 즉각적인 전시효과다. 관계 당국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 잠재적 범죄자들을 위축시키고 일반인들에게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그런 대증요법은 금방 밑천이 드러난다. 진통제만 복용하면서 병을 키우는 이치다. 더 큰 문제는 이미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더한 곤경으로 몰아넣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두 번째 관점의 난점은 지속성이다. 제도를 개선하고 보완하는 것은 힘들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일반 대중의 지지가 필수적인데, 돈도 많이 들고 개선의 즉각적인 효과를 확인하기 힘들기에 빨리 지지를 철회할 공산이 크다.

두 정책을 적절하게 섞는 것이 필요하다. 즉각적인 행동으로 위축과 안정을 도모하면서, 소외층을 다시금 통합하는 것, 일종의 '종합 대책'이 유망해 보인다.

그런데 범죄의 문화적 특성을 생각하면, 종합 대책의 허점이 보인다. '묻지마 범죄'가 문화적 전염병의 속성을 지녔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이언 해킹의 배회증(徘徊症) 분석에서 이를 살필 수 있다.

19세기 말 유행했던 배회증은 갑자기 몽환적 상태에 빠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병이다. 해킹은 배회증 환자가 주로 기술직에 종사하는, 가족 부양의 책임을 진 남자임에 주목한다. 말하자면,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당시에 처음 상품화된 여행은 그런 꿈을 실현할 수단처럼 보였지만 비싼 가격 탓에 선택할 수 없었다. 해킹은 바로 그 사람들에게 배회증이 심각한 책임추궁을 피하면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배회증은 질병이라기보다 책임의 중압감과 현실의 고달픔에서 벗어나려는 특정 계층의 문화적 탈출구이자 돌파구였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발견된 배회증은 짧은 시간 동안 유럽 각지의, 다른 누구도 아닌 의무를 짊어진 기술직 남성들에게 전염된다. 배회증의 갑작스런 소멸도 흥미롭다. 값싼 대중관광이 시작된 20세기 초에 배회증은 갑자기 사라진다. 해킹은 여행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 순간 그것이 사라진 것을 배회증이 문화적 질병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한다.

'묻지마 범죄'도 문화적 전염병의 속성을 지닌다. 범죄에 병이라는 면죄부를 줄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범죄도 전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범죄가 소외감과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이 펴지는 순간, 그것은 문화적 전염병이 된다.

자살률을 성공적으로 낮춘 핀란드의 경험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종합 대책'은 물론이고 '자살 금기어' 정책도 펼쳤다고 한다. 핵심은 문화적 전염의 통로를 막는 것이다. 개인이나 언론 모두 자살이란 단어를 가급적 사용치 않음으로써, 자살 충동의 확산과 방법의 학습을 막고, 무엇보다 '자살이 어떤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문화적 전염의 통로를 봉쇄하는 것, 아마 우리에게도 그런 것이 필요할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 "처벌 알면서도 자포자기식 '확신범죄'…적개심·소외감 걸러줄 완충지대 필요"

'묻지마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이고 무작위적인 폭력(Random violence)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어떤 행동을, 왜, 어떻게' 할지를 아무도 예견할 수 없는 범죄이기 때문에 우리를 더욱 더 불안하게 한다. 단지 그 시간과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행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예방이 거의 불가능하고, 시민 누구나 자신의 행동과 잘잘못에 관계없이 불행한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더욱 위험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계획된 범죄의 경우 범죄자도 합리적 선택을 하는 이성적 존재로서 분명한 동기를 가지고, 쉽게 범행할 수 있고, 범행에 성공할 수 있으며, 발각되거나 붙잡히지 않으며, 범행으로 얻게 되는 이익이 큰 표적, 시간, 장소, 수법을 선택하지만 '묻지마 범죄'는 검거되지 않기 위해 굳이 으슥한 곳을 찾거나, 야밤까지 기다리지도 않으며, 그들의 범행동기도 구체적이지도 분명하지도 않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런 범죄자들을 '거리의 악마'라고 부르고 있다.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묻지마 범죄'의 동기는 '사회에 대한 누적된 분노와 증오'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회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외친다. 전문가들은 '1 대 99'로 표현되는 극심한 빈부의 격차에 기인한 양극화와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이 원인이라고 한다. 사회가 자신을 지금의 처지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사회에 분개하고 사회와 그 구성원을 증오한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낙오되어 더 이상 나빠질 수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사람들이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그러나 서울 여의도사건의 범인이 자살할까 하다가도 혼자 죽기는 억울해서 보복하고 싶었다고 한 것처럼, 사회에 대한 적개와 분노로 방아쇠 역할을 하는 조그만 계기에도 무고한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묻지마 범죄자는 처벌받을 걸 알면서도 세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범행하는 일종의 '확신범죄'다. 이는 곧 형벌을 통한 범죄억제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형사정책뿐 아니라 오히려 다소 거시적, 장기적일지 모르지만 총체적인 사회정책적 접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들에게도 승자독식만이 아닌 '패자부활'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제와 배척으로 그들이 자신을 어둠 속에 숨기고 세상과 사회에 분노와 적개심을 갖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포용하는 사회적 햇볕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비정규직 대책 등 '양극화 현상'을 완화하고, 양극화의 아픔을 치유하는 노력을 통해 사회, 경제적으로 낙오되고 소외된 '은둔형 외톨이'를 양산하지 않는 건강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을 수 있는 사회의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선 우선 자세한 조사를 바탕으로 정기적인 건강검진처럼 심리나 인성검사 등을 통해 심리적, 인성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미리 찾아내어 예방적 치료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정상인과 폭력범죄자의 뇌가 전두엽과 세로토닌이 차이가 있다는 뇌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나서서 '은둔형 외톨이 지역지원센터, 보건소, 정신건강보건센터'에서 이들에 대한 상담과 지원을 함으로써 묻지마 범죄가 한풀 꺾였던 것처럼 은둔형 외톨이들에 대한 상담과 훈련의 제공, 일자리 알선, 복지서비스제공, 정신건강치료의 제공 등을 위한 사회 안전망과 보호망 강화 등 국가의 관리능력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묻지마 범죄'는 결국 소통의 문제다. 따라서 사회를 자신을 소외, 배제시키는 높은 벽이나 장애로 생각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을 은둔과 외톨이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사회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공동체를 가족과 이웃의 관심을 바탕으로 구축하고, 그들을 포용함으로써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중압감을 걸러줄 수 있는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발생하는 끔직한 사건에 대해선 잘못할 경우 충동과 모방에 의한 연쇄사건으로 비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엄중한 책임도 따라야 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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