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35ㆍ본명 박재상)가 아이돌 그룹 중심인 K팝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가요기획사가 해외시장 공략을 목표로 가수를 육성해 적극적인 현지 프로모션으로 성공한 것이 이제까지 K팝의 패러다임이었다면, 싸이는 유튜브와 SNS를 적극 활용한 '단독 플레이'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싸이의 히트곡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수는 28일까지 6,500만건을 넘어섰다. 걸그룹 포미닛의 현아와 함께 부른 '오빤 딱 내 스타일'과 뮤직비디오 메이킹 필름, TV 음악방송 공연 영상 등의 조회수를 합하면 1억건이 훌쩍 넘는다.
이 같은 세계적인 열광을 업고 싸이의 미국 시장 진출이 본격화하고 있다. 싸이가 북미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아이돌 가수 저스틴 비버의 기획사와 미국 활동에 대해 논의하고 돌아온 사이 '강남스타일'은 미국 아이튠즈 음원 차트에서 44위까지 오르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강남스타일'의 인기는 아이돌 그룹 중심의 K팝 수출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싸이는 자생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에 나섰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현상의 원동력은 유튜브와 SNS다. 유튜브는 앨범 판매와 음원 판매 등 현지 유통망을 거쳐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고 싸이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줬고,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큰 유명인들의 SNS 언급은 엄청난 광고 효과를 거뒀다.
싸이의 해외 진출은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서의 인기를 등에 업지 않고도 미국 진출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여타 아이돌 그룹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27일 현재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의 국가별 유튜브 조회수를 보면 총 5,968만건 중 미국이 1,227만건으로 한국(1,439만건)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반면 일본은 태국, 캐나다, 호주, 영국, 핀란드보다 낮은 16위에 그쳤다. 올해 상반기 국내 3대 가요기획사 SMㆍYGㆍJYP엔터테인먼트의 유튜브 영상 조회수에서 일본이 가장 많은 건수를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싸이의 인기는 유독 북미, 동남아, 유럽에 집중돼 있다.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장르인 댄스 팝에 유치하지만 위트 넘치는 뮤직비디오와 코믹하면서 중독성 강한 말 춤 등을 결합한 결과라는 게 미국 현지 매체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유머는 싸이가 미국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다. '강남스타일'에 대한 반응을 유튜브에 올려 화제를 모은 10대 소녀 민디 앤더슨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K팝에 유머가 부족해 아쉬웠는데 싸이는 음악에 유머를 가미해서 좋다"고 말했다.
미국 유명 연예인들의 공개 지지도 '강남스타일'의 인기에 불을 붙였다. 아이돌 스타 저스틴 비버의 매니저 스쿠터 브라운을 비롯해 팝 스타 티페인, 로비 윌리엄스, 조시 그로반, 케이티 페리 등이 SNS에 남긴 한마디는 TV 광고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국내 가요 기획사들은 싸이의 미국 진출이 기존의 방식과 전혀 다르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가요기획사 대표는 "미국에서도 전통적인 프로모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유튜브와 SNS로만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며 "K팝 해외진출의 틀을 뒤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새로운 방식을 개척했다는 점, 미국 대중이 인지하는 K팝의 카테고리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싸이의 해외 진출 덕에 K팝의 해외 수출이 더욱 다양하고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커진다. 또 다른 가요기획사 대표는 "K팝 인기가 전무한 상태에서 국내 가수가 미국에 진출한 게 1세대라고 하면 아이돌 가수의 점진적 진출이 2세대, 싸이는 그러한 토대 위에서 더욱 다양성을 추구한 3세대로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 '강남스타일' 경제적 효과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얼마나 벌었을까. 국내 앨범ㆍ음원 판매와 미국 아이튠즈의 음원ㆍ뮤직비디오 판매, 광고 출연, 콘서트 티켓 판매 등을 포함하면 총 매출액이 10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강남스타일'을 통한 싸이의 수입은 아직까지 국내에 한정돼 있다. 정상급 아이돌 가수들의 매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게는 30~40%에서 많게는 70~80%에 이르지만, 싸이에게 아직 일본은 미국보다 넘기 힘든 시장이다. 가온차트에 따르면 싸이의 6집 앨범 수록곡 다운로드는 640만건, 스트리밍은 4780만건에 달한다. 앨범 판매량은 약 3만장으로 온ㆍ오프라인 매출액만 8억원 이상이다. 지난 11일 열린 단독 콘서트를 통해선 30억원을 벌어들였다. 현재 출연 중인 이동통신업체, 음향기기 업체 등의 광고 외에 10여 개의 광고 계약을 논의 중이어서 광고 수입은 30억에서 50억에 달할 전망이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북미 지역 매출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현재 아이튠즈를 통해 뮤직비디오와 음원이 판매되고 있는데 미국 내 음원 단가가 국내보다 10배 이상 비싸다는 것을 감안하면 음원 판매로만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유튜브 광고도 무시할 수 없는 수입원이다. 공식 뮤직비디오는 물론 '강남스타일'의 음원을 차용한 패러디 영상의 조회수가 늘어날수록 광고 수입도 많아진다. 미국 온라인매체 소셜타임스에 따르면 1억건의 조회에 약 10만 달러(약 1억 1,000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싸이는 최근 저스틴 비버의 매니저와 미국 내 앨범 발표 등을 논의하고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앨범이 미국을 통해 전 세계에 발매된다면 '100억원'이라는 매출액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