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10여년전 스러져간 의문의 죽음들… 비장함 억누르고 담담하게 말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10여년전 스러져간 의문의 죽음들… 비장함 억누르고 담담하게 말하다

입력
2012.08.28 11:50
0 0

"다 죽어. 죽는 거야… 고문당해 죽고, 단검에 찔려 죽고, 생매장으로 죽고, 물에 빠져 죽고, 피 흘려 죽고, 죽고 죽고 또 죽고!" 입술에서 풀려 나온 한영수의 넋두리는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죽은 걸 살려내라 죽고, 진상 규명하라 제 손으로 불 질러 죽고!"

장성희 작가, 김철리 연출의 연극 '달빛 속으로 가다'가 12년만에 해원처럼 다시 무대의 빛을 쐰다. 작품의 폭에 비해 무대 복이 참 박했던 작품이다. 지난 2000년 정부의 '새로운 예술의 해 희곡 공모'전에 선정됐으나 딱 일주일 동안 공연됐으니.

텍스트대로라면 시국 사건에 연루돼 목숨을 내놓은 젊음들에게 바친 김지하 시인의 '척분(滌焚)'에서 봤던 비장함마저 스친다. 그러나 이 시대에까지 그 같은 감정선을 요구한다는 것은 폭력 혹은 가당찮은 시도가 아닐까. 10여년 세월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연출자가 새삼 의욕에 넘쳐 있는 것은 그 같은 문제 의식 때문이다.

"리얼리즘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했던 초연 때가 꼭 그랬어요."원작의 의미를 미처 파악하지 못 했다며 중견 연출가 김철리씨는 재도전의 자세를 다잡는다. 원작자와 연출자가 다시 그대로 콤비를 이뤄 만드는 무대는 세월을 격해, 또 다른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억울하게 죽은 목숨을 위한 씻김으로 무대의 중심을 잡아, 연극을 다시 만들고 싶습니다." 상징적 수법에 더 의존하고 영상을 도입한 새 시도는 단순한 볼거리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12년전에는 이 희곡의 극성(劇性)을 찾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망자들에 대한 살아있는 자들의 기억 너머로 달빛이 휘영청 비추는 결말부의 감정선에 초점을 맞춰 집중하고 싶다는 말이다.

1999년 늦여름에서 최근의 '강남스타일'까지, 그 사이에 펼쳐졌던 격동과 변천을 암시하는 신문, 사진, 동영상, 인터넷 등 각종 차원의 시각물이 무대에 투사된다. 희곡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감각적으로 구현해 낸다는 의도다. 그것은 김씨가 젊었을 적, 그 숨막힐 것 같은 현실적 질곡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감각적 통로다.

무대의 상징성과 배우들의 사실적 연기가 이뤄낼 조화가 관건인 무대다. 극단 배우들이 모두 출연하는 이 연극에는 남기애, 김현 등 연기력이 무르익은 외부 인력까지 객원으로 출연해 각각 엄보살ㆍ시어머니를 연기, 모처럼 사람 냄새로 꽉 찬 무대가 펼쳐질 전망이다. 예를 들어 볼일 보는 대목까지 이 연극은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달빛에 오줌 줄기 옥류만 같으니 신선이 따로 없네."

작가는 "대학생 의문사 사건 등으로 뒤숭숭하던 2000년과 장준하 의문사 사건으로 해묵은 논쟁이 재연된 현재를 보면서 시간의 순환을 느끼게 됐다"며 초기작에 애정을 표하면서 "소란 속에서 고요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새 작업에 강한 기대를 내비쳤다. 9월 21일~10월 7일 세종문화회관. (02)399-1114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