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무디스가 대한민국 신용등급을 'Aa3'로 올리며 내놓은 자료를 읽다가 문득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예수가 고향 나사렛에서 홀대 받던 장면이다. 타 지역은 예수에 대해 열광하는데 유독 고향 사람들은 '목수 요셉의 아들 아니냐'며 배척했다. 예수조차 "예언자도 고향에선 환영 받지 못 한다"고 푸념했다.
예수와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고향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ㆍ유럽 경제위기 등 다분히 외부 요인의 영향이 큰데도, 나라 안에서는 '경제를 망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권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추경'에 소극적이라며 여야 모두 비난하고 있으며, 무리하게 빚을 내 산 집 값이 떨어져 하우스푸어가 된 사람들은 정부의 대책이 부족하다며 원망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타향'의 객관적 평가자 무디스는 이 대통령과 박 장관이 펼치고 있는 경제정책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추경 요구를 거부하고 균형재정 의지를 고수하고 있는 걸 칭찬했고, '하우스푸어'의 가계부채 문제도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선을 앞두고 자극적 수치로 상황을 과장하고 대책을 요구하던 주장들은 힘이 빠지고, 그만큼 이 대통령과 박 장관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자신감 회복이 지나친 걸까. 요즘 재정부 주변은 '경제 선진국이 됐다' '노는 물이 달라졌다'며 자화자찬 일색이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와 피치가 이미 1995년과 96년 한국을 'AA'등급으로 평가했던 사실은 외면한다.
재정부 관계자는 "신용평가는 종합예술"이라고 말했다. 국제금융뿐 아니라 재정ㆍ예산ㆍ세제 등 재정부의 모든 정책이 들어 맞았기 때문에 상향될 수 있었다는 '제 자랑'이다. 그러나 정작 등급 상향을 실현시킨 주인공들은 따로 있다. 외환위기로 인한 긴축에 항의해 돌을 든 그리스인과 달리 국가재정에 보탬이 되고자 금을 들고 은행으로 몰려갔던 보통 사람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절반에 불과한 사회안전망을 원망치 않고 묵묵히 견디는 노인 등 사회약자들. 현대차가 도요타보다 싸게 팔리도록 높은 환율을 감수한 대다수 국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높아진 등급으로 인한 혜택이 대기업 위주ㆍ수출부문을 위해 희생한 서민ㆍ중소기업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게 지금 정부에게 주어진 과제다.
조철환 경제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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