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폭풍 전야, 뭔가 경험해보지 못한 큰 것이 우리를 덮칠 예정이라는데 가히 그 정도를 모르니 상상만으로 모두가 똘똘 똬리를 틀고 움츠려 있던 지난밤, 그렇게 누워 대비할 수 있는 방안이라야 스마트폰으로 시시각각 올라오는 저마다의 조바심이어서 그거나 읽다 잠 깨어보니 어김없이 아침… 배달우유는 도착해 있고 택배 기사들은 온전히 상자를 들고 나르느라 딩동 벨을 눌러대고 정류장에 줄을 이어 선 사람들과 시시각각 도착하는 버스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반복되는 정직한 일상만큼 무서운 게 또 어디 있으려나.
수도권으로 올라오면서 세력이 약해진 태풍이 아래 지방을 통과하며 벌여놓은 그 무시무시한 괴력의 증거물들을 뉴스로 확인했다. 컨테이너 박스에 깔린 경비원이며 강풍에 추락사한 병원 시설과장이며 날아온 간판에 맞은 여자며 나무에 깔린 노동자며 그밖에 미처 보도되지 못한 사고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마이크를 쥔 기자보다 그 기자를 찍기 위해 서 있을 카메라맨이 더 안쓰럽게 예상되는 바, 이런 재난 때마다 고통이 가중되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지켜줄 어떤 방도는 정말이지 없는 걸까. 낡은 유모차에 콜라병 몇 개 싣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할머니를 보았다. 내 시선은 과연 할머니의 ㄱ자로 굽은 허리에 머물렀던 걸까, 할머니 뒤로 김이 폴폴 올라오는 만두가게 찜통에 꽂혀 있던 걸까. 하여간 이놈의 식탐, 전쟁이 나도 만두타령할 거라니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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