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이제까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살아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정치인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나는 이제껏 정치인들이란 대중의 지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므로, 보통 사람들의 취향과 가치 지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나는 이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정치인들은 때때로 대중들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하는 말과 행동을 하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도 반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안철수를 두고 한 마디씩 하는 기성 정치인들의 언행이 대표적인 예다. 구체적으로는 이른바 정치적 경험 논변이다.
그 정치인들에 의하면 안철수는 대통령이 되기 어려운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안철수가 정치적 경험이 전혀 없고, 따라서 정치의 최고 정점에 서서 일을 해야 하는 대통령의 자격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안철수가 지금 이 정도의 높은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치적 경험이 전무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정치의 영토에 거주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크나큰 정치적 자산이며 바로 거기에 사람들은 그토록 열광하고 있다.
다소 어눌하면서도 단순한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그토록 밝은 표정을 지으며 정의와 평화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 뜨거운 광장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서가 아니라 책을 내면서 자신의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는 것, 엄청난 재산으로 재단을 만들겠다고 애매한 시기에 덜컥 선언해버린 것, 대중들의 관심 뒤로 꼭꼭 숨으며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것, 그러면서도 갑자기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 악기를 연주해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 않는 것, 우리 나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하나씩 딸 때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무슨 축전을 보내는 대통령처럼 매번 감동스럽다는 멘트를 천연덕스럽게 날리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그의 정치적 무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러니 안철수가 정치적 경험이 없다는 점을 그의 경쟁자들이 계속 공격하는 것은 이중 자살골이다. 우선은 안철수를 지지하는 국민을 공격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국민들이 좋아하지 않는 어떤 점을 자신의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정치적 경험이 없다는 공격의 배후에는 제왕적 리더십이라는 구시대의 잔재가 숨어있다. 우리는 '많이 알고 많이 경험한' 그래서 개인적인 리더십으로 위기를 타개하려 했던 많은 불행한 지도자들을 알고 있다. 우리의 합리적 민주주의를 이끌고 나갈 정치적 지도자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비전과 철학으로 그리고 그와 정치적 길을 함께 하는 동료와 세력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안철수가 아니라 오히려 '안철수의 친구들'이며 안철수의 정치적 경험이 아니라 그 친구들의 정치적 지향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안철수 현상은 흔히들 이야기하듯 정당정치의 위기를 알려주는 징후가 아니라 오히려 그 혁신의 요구로 해석돼야 한다. 그리고 그 혁신의 방향은 공유와 소통의 시대정신으로부터 온다. 한 집단은 그 외부에 자신을 개방하고 밖으로부터 수혈을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내부에 건강한 생태적 순환을 확보할 수 있다. 대학도 기업도 정치도 모두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많은 '안철수'가 생겨나야 한다. 개방이 미래의 생존을 결정할 것이다.
안철수라는 '개인'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앞으로의 몇 달을 낭비하는 것은 정당과 정치의 혁신을 위한 다시 없는 기회를 또 다시 놓치는 일이 될 것이다. 그가 결국 대통령 후보로 나서든 그렇지 않든, 그가 당선되든 당선되지 않든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안철수 현상'은 우리 정당 정치의 축복으로 작동해야 한다. 한국 정치는 그를 겪으며 앞으로 또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김수영 로도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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