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12월 대선으로 가는 여정에서 중요한 길목이었다. 예상된 바이긴 하지만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선후보를 확정 지은 것은 중요한 행사였다. 박 후보는 곧바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이희호 여사와 권양숙 여사를 찾는 등 화합을 위한 광폭 행보를 펼쳤다. 민주당은 제주도에서부터 후보선출 순회경선에 들어갔다.
여야의 의미 있는 정치행사에도 불구하고 주요 대선주자들의 경쟁판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주말을 전후해 실시된 각 여론조사기관의 지지조사에 따르면 박 후보와 안철수 서울대교수의 팽팽한 양자대결 구도가 대체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후보가 우세한 조사도 있고 안 교수가 앞선 조사도 있어 전체적으로는 엎치락뒤치락 혼조 양상이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의 컨벤션 효과와 파격적인 화합 행보에도 상승세가 미미한 것은 박 후보의 지지도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에 힘을 싣는 근거가 될 만하다. 그에 비해 안 교수는 이런 저런 검증 논란 속에서도 지지세를 유지하거나 늘려가고 있다. '안철수 현상'이 일시적인 바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상당히 강고한 실체로 자리 잡았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안철수 현상의 배경에는 국민들의 강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분노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분노는 집권여당 대선 후보인 박근혜에게 향하지 않는다. 지난 총선 결과에서 잘 드러난 사실이다. 또한 그 분노의 반사이익을 민주통합당이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결국 이명박 정부와 여야를 포함한 기성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분노와 환멸의 반사적 이익은 기성 정치권 밖에 위치한 안철수 교수에게로 쏠릴 수밖에 없다.
최근 안 교수의'안철수의 생각'출판과 힐링 캠프 출연이 가파른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진 것도 이런 배경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상식과 논리로는 그에 대한 거의 묻지마 식 지지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 대선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지배되는 선거가 조짐이 농후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에 대한 어설픈 검증 시도나 공격은 오히려 그에 대한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켜 지지도를 높여주는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안철수 룸살롱'이 인터넷 검색어 1위를 오르내리던 지난주 후반 안 교수의 지지도가 상승세를 보인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식 대선출마 선언을 미루며 장외에 머물고 있는 그에 대해 본격적인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운 사정은 있다. 그러나 안 교수측의 간단한 상황설명으로 해명이 되는'찌질한'수준의 검증은 안 교수의 대국민 노출도를 높여주는 역할만 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안철수 현상의 지속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주 들어 증폭되고 있는 안철수 교수 사찰 논란도 결국 안 교수의 지지도를 높여줄 공산이 크다. 지난주 뉴스통신 가 보도한 경찰의 안 교수 사찰설에 대해 경찰은 강력히 부인하지만 그 비슷한 정황이라도 확인되면 파문이 클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에는 경찰이 안철수 서포터즈가 되는 셈이다. 국민의 시선을 붙잡는 흥행은커녕 한심한 집안싸움이나 벌이고 있는 것으로 비치고 있는 민주당 대선경선도 결과적으로 안 교수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상대적인 것이지만 안 교수에 부여된 도덕적인 이미지가 그에 대한 찌질한 검증을 불러들이는 요인이다. 그러나 한방에 훅 날려버릴 그런 소재가 기성 정치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찌질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온 그에게 있을까 싶다.
기성 정치권이나 기득권 세력이 정말로 안 교수를 견제하고 싶다면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량 즉 국정운영 능력과 정치력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물론 역대 대통령들을 하나하나 거명하면서 그들이 오랜 정치경력과 강력한 정당을 배경으로 가졌지만 과연 성공한 대통령이었느냐고 되묻는다면 별로 답할 게 없을 테지만.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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