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나와라, 이쪽은 고요의 바다. 이글이 착륙했다."
1969년 7월 20일 오후 10시 56분 20초 미국의 우주탐사선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에 안착했다. 숨 막히는 몇 시간이 흐른 후 한 남자가 흰색 헬멧과 우주복 차림으로 우주선 사다리를 타고 내려 왔다. 5억2,800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 표면에 인류 최초의 발자국이 새겨졌다. 발자국의 주인공은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역사적인 말을 남겼다.
인류 사상 처음 달에 상륙한 미국의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별세했다. 향년 82세.
유족은 암스트롱이 "관상동맥 협착 증세로 8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았으나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25일 말했다. 그러나 정확히 언제 어디서 사망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 전역에서는 우주 영웅을 애도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그가 냉전시대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미국에게 승리를 안겨준 주인공인데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기대하는 현재의 미국 상황과 맞물리면서 추모 열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암스트롱과 그의 동료 우주비행사들은 미국의 열정을 갖고 달을 향해 떠났다"며 "당대뿐 아니라 미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영웅 가운데 한 명"이라고 그를 추대했다. 공화당 대선후보 미트 롬니는 "엄청난 용기와 끝없는 애국심으로 인류가 가보지 못한 곳을 걸었다"며 "지구에서 처음 찾아온 그를 달도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폴로 11호에 함께 탑승했던 에드윈 올드린 주니어는 2019년 달 착륙 50주년 행사에 함께 할 수 없게 된 것을 안타까워했으며 찰스 볼든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은 "사람들은 인류 역사상 지구 밖으로 내디딘 첫 발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하이오주 워퍼코네타에서 태어난 암스트롱은 여섯 살에 처음 비행기를 타고 열다섯 살에 운전면허증에 앞서 비행사 자격증을 따는 등 일찍부터 비행에 재능을 보였다. 대학 재학 중 해군에 입대한 그는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3년간 78회 비행임무를 완수, 서울 수복에 공을 세우기도 했다. 전장에서 돌아와서는 55년 NASA의 전신인 미 항공자문위원회(NACA)에 합류해 62년 우주비행사로 선발됐다.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디딘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60년대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약속 기한이 5개월 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다. 냉전시대에 사사건건 경쟁하던 미국과 당시 소련은 우주 탐사로 눈을 돌렸는데 미국은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 최초의 우주인 등의 타이틀을 연달아 소련에 빼앗기며 치욕을 삼키던 중이었다. 이때 암스트롱의 달 착륙은 미국이 세계를 양분하는 강대국의 자존심을 회복한 계기가 됐다.
암스트롱은 겸손하고 강단있는 성품으로도 유명하다. 달 착륙으로 영웅이 됐을 때 나이가 38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 앞에 거의 나서지 않던 암스트롱은 지난해 오바마 행정부가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폐지하자 9월 의회에 출석해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미국 최초의 우주인인 존 글렌 전 상원의원은 "달 착륙 이전이나 이후에나 내내 겸손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역사학자 더글라스 브링클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수줍음 많은 영웅"이라고 그를 회고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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