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로선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것이었다. 한 관계자는 "어려운 싸움이 될 것으로는 봤지만 설마 미국 배심원들이 애플쪽 요구는 다 들어주고 삼성 주장은 모두 기각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세계 IT시장 판도를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거의 모든 나라 법원에서 동일사안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배심원들도 부담이 클 것이고 결국은 애플쪽 손을 들어주되 삼성도 어느 정도는 배려하는 '절충형 평결'을 내릴 것이란 기대도 컸다.
하지만 결과는 완패였고, 삼성전자는 비상이 걸렸다. 특히 삼성전자는 이번 평결에서 애플의 디자인이나 사용자환경(UI)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는 부분보다, 애플쪽이 삼성전자의 통신기술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부분에 더 실망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UI 관련특허는 설령 침해판정이 나오더라도 대체기술로 얼마든지 우회할 수 있는 만큼 큰 문제는 아니다. 우리로선 애플이 삼성전자의 통신기술특허를 침해한 사실만 인정된다면 사실상 특허대전을 승리로 가져갈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는데 그게 무산돼 상황이 심각해졌다"고 전했다.
팀쿡 애플CEO과 세 차례나 대면ㆍ전화 회동까지 가졌던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을 비롯해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통신사업부장 등 삼성전자 수뇌부는 25일에 이어 26일에도 서울 서초동 본사에 나와 장시간 대책회의를 가졌으며, 수비 보다는 공격을 강화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평결 직후 마이클 제이콥스 애플측 변호사는 "7일 이내에 삼성전자 제품의 미국내 판매금지 조치를 요구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어떻게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법정 총력전을 편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평결과는 별개로, 애플의 취약포인트인 LTE쪽 특허공세의 고삐를 죈다는 구상이다. 회사 관계자는 "세계 통신시장은 LTE로 가고 있는데 애플이 LTE폰을 만들려면 삼성전자 특허를 절대로 피해가지 못할 것"이라고 전의를 다졌다.
미국 내 평결이 현재 세계 10개국에서 맞붙은 애플과의 특허대전에 미칠 영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의 양 사 특허소송전도 미국처럼 디자인과 통신기술 등을 쟁점으로 유사하게 대치 중이어서, 이번 미국 배심원단 평결이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은 특허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시각도 있지만, 세계 최대시장에서 패한 삼성전자로선 여간 신경 쓰이는 부분이 아니다.
팀 쿡 애플CEO는 평결 후 사내 직원들에게 "배심원단이 삼성의 행동이 고의적이었다는 점을 밝혀내고 도둑질은 올바르지 않다는 강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보낸 데 대해 갈채를 보낸다. 전 세계가 이 메시지를 듣기를 바란다"며 승리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애플은 이번 평결을 계기로 삼성전자를 넘어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 전체로 포문을 돌릴 태세다. "삼성전자의 이번 패배는 구글이 직접적으로 거명되지 않았을 뿐이지 구글 진영의 대패"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브라이언 러브 미 산타클라라대 법대 교수는 "이번 평결은 분명히 다른 안드로이드 파트너와 운영자들을 고심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평결이 싸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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