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진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가 '소통하는 과학자'라고 추천한 주철민 연세대 기계공학과 교수가 이번엔 '호기심ㆍ배움'을 주제로 정의헌 광주과학기술원 기전공학부 교수를 소개한다.
현대 들어 각 과목이 세분화되면서 전문성을 띠게 됐다. 그 중에서도 과학은 유별난데, 가령 같은 생물학이라도 바이러스, 줄기세포 등 분야가 엄청나다. 그래서 한 번 전공을 택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게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의헌(40) 광주과학기술원 기전공학부 교수는 전공을 세 번 이상 바꾼 거 같다. 그때마다 정 교수는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 하나라도 제대로 못할까 걱정"이라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면 실패해도 즐거운 경험이 되는 거니까 관심이 가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내가 학부생일 때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우리 과 조교였다. 정 교수의 전공은 로켓 연소. 원래 물리학을 하고 싶었는데 "물리학과는 천재들만 가는 곳이란 소문을 듣고 주저하다가" 항공우주공학과에 들어갔단다. 입학 이후에도 물리학과를 기웃 거리며 수업을 청강하다가, 양자역학 등 물리학 수업을 본격적으로 듣고 싶어 아예 학교를 1년 더 다녔다.
석사를 마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유학길에 오르면서 정 교수는 의공학 쪽으로 전공을 틀었다. 그때 정 교수는 하버드대 메디컬스쿨과 MIT가 함께 운영하는 연계 프로그램 HST(Health Science and Technology)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이 프로그램은 제대로 된 의공학자를 키워보자며 각각 의대와 공대로 유명한 하버드대, MIT가 만들었다. 그러나 정 교수는 생물학을 배운 적이 없어 엄두도 못 냈다.
고민 끝에 그는 MIT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도중에 HST에 참가한 선배 3명을 찾아가 많은 걸 물어봤다. 그들의 조언대로 정 교수는 MIT 학부 생물학 수업을 들은 뒤, 이 프로그램에 지원에 합격했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다. 가령 병리학을 공부하려면 생화학을 알아야 하고, 생화학의 기본은 유기화학이다. 유기화학을 공부한 다음, 생화학을 배워야 병리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단 얘기. 배경지식이 부족한 정 교수로서는 물어보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서 그는 조교가 진행하는 보충수업 시간에 꼬박 참석했다. 자신이 속한 반은 물론 다른 반 보충수업에도 몰래 들어가 수업 때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물으며 하나 둘 배웠다.
현미경을 만드는데 기본이 되는 광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신경과학에 관심이 간단다. 같은 대학 교수와 함께 빛을 이용해 신경세포를 자극, 뇌졸중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낯선 분야여서 지난 학기엔 동료 교수가 하는 신경과학 대학원 수업도 학생들과 함께 들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개인적으로 계속 신경과학 공부를 하고 있다.
정 교수는 항공우주공학과에 입학할 땐 상상도 못했을 일을 하고 있다고 종종 말한다. 다른 분야에 계속 호기심을 갖고 길을 열어 놓으니까 기회가 생겼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부족하거나 관심이 가는 분야면 묻고 또 물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모습. 조교일 때부터 봐온 그 모습은 교수가 된 지금도 한결같다. 내게 동기부여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리=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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